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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품 받자 어머니에 달려가 강복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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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 오후 2시부터 ‘2008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식’이 열리는 자리였다. 정진석 추기경(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은 30분 먼저 서품식장에 나왔다. 정 추기경은 사제가 되려는 이들의 부모를 찾아가 말을 건넸다. 그리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체육관을 가득 메운 1만4000여 명의 각 성당 신자들은 부러운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추기경님과 악수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네.’ 굉장한 ‘특권’이었다. 그런데 그건 정 추기경의 ‘배려’였다. 고이 키운 자식이 독신의 삶을 가는 걸 바라봐야하는 부모를 향한 ‘깊은 배려’였다. 평소 정 추기경은 “사제가 부모상을 당하면 어떠한 일정이 있어도 꼭 찾아간다”고 말했다. 사제의 부모, 그 애틋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체육관은 빼곡했다. ‘봉천5동 성당’ ‘방배동 성당’ ‘사당동 성당’ ‘목3동 성당’ 등 큼지막한 글이 2층에 빙 둘러붙어 있었다. 그 아래 해당 성당의 신자들이 사제 서품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체육관 1층에는 붉은 카펫이 깔린 제단이 마련됐다. 제대에는 한 손에는 성서, 한 손에는 칼을 든 ‘사도 바오로’가 그려져 있었다. 올해가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이기 때문이다. 그 곁에 바오로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티모테오2서 4장7절)” 어쩌면 그게 사제들이 가는 길의 ‘종점’일지도 몰랐다.

이날 서품을 받는 새 신부는 모두 19명이었다. 그 중에는 외아들이 6명이었다. 장남(외아들 포함)은 13명이었다. 신부가 된 형에 이어 서품을 받는 동생도 있었고, 수녀가 된 누나에 이어 신부가 되려는 이도 있었다. 오후 2시, 19명의 수품 후보자가 불 켜진 초를 들고 입당했다.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초처럼 세상의 빛이 되겠다’는 의미였다.

식이 시작됐다. 가톨릭대 신학대학장 최기섭 신부가 수품 후보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그들은 “예! 여기 있습니다!”라며 우렁차게 답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건 예수의 부름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주님 안에 온전히 녹아들고자 길을 떠나는 제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하는 간결한 외침이기도 했다.

수품 후보자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들 앞에서 정 추기경이 물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깨끗한 제물로 봉헌하신 대사제 그리스도와 날로 더욱 깊이 결합하여, 여러분도 자신을 인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봉헌하겠습니까?” 그들이 답했다. “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봉헌하겠습니다.” 하느님께 올리는 제물 중에 ‘나’보다 더 큰 제물이 있을까. 그들은 그걸 올리고자 했다.

이어서 사제서품식의 ‘하이라이트’인 부복(俯伏)이 열렸다. 흰 옷을 입은 19명의 젊은이는 제단에 엎드렸다. 얼굴을 바닥에 묻고, 배도 바닥에 댔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 위로 노래가 흘렀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엎드린 채 꽤 시간이 흘렀다.

저것은 대체 어떤 풍경일까. 땅에 엎드려, 땅보다 더 낮게 자신을 내리고자 하는 저들은 과연 누구일까. 거기에는 십자가에 자신을 올리는 예수의 풍경이 녹아 있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못을 박고자 하는 ‘구도자의 간절함’이 녹아 있었다.

바로 뒤에는 그들의 부모가 앉아 있었다. 부모들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그건 각시가 없는 ‘아들의 결혼식’에서 흘리는 눈물이기도 했다. 또 멀고 험한 길을 떠나는 자식에 대한 염려이기도 했다. 사연도 있었다. 장우건(34) 새 사제는 어머니 신호섭(59)씨가 남편 사별 후 22년간 홀로 키운 외아들(무녀독남)이다. “오늘 우셨나요?”라고 물었더니 신씨는 “저는 울지 않아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들이 ‘신부가 되겠다’고 했죠. 저는 ‘좋다’고 했죠. 아들의 삶이니까 존중해야죠. 그게 맞지 않나요?”라며 싱긋이 웃었다. 서품을 받은 뒤 장우건 새신부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저는 정말 불효자죠. 그런데 저는 이게 믿음 안에서의 ‘최선의 효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서품을 받은 뒤 장 신부는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어머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첫 강복 기도, 그건 어머니께 드리는 새 사제의 선물이었다.

1남1녀 중 딸은 수녀, 아들은 신부가 된 부모도 있었다. 김재현(27) 새 사제의 아버지 김영태(59)씨는 “누나가 먼저 수녀님이 됐어요. 그리고 아들이 오늘 신부님이 됐죠. 가슴이 아립니다. 혼자서 가야 하는 고행길이니까”라며 “그래도 ‘내 자식’에서 ‘예수님 자식’이 되는 건 더 큰 영광이죠. 저희 내외는 보잘 것 없는데 말이죠.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꾸는 꿈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곁에 선 어머니 장혜영(54)씨에게 “손자·손녀를 못 볼 텐데 아쉽지 않으세요?”하고 물었더니 “요즘 꼬마들 보면 다 저희 손자·손녀라고 생각해요. 사람들 생각처럼 그렇게 아쉽진 않다”고 말했다.

사제서품식이 끝나자 많은 부모가 웃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건 가슴 저미는 미소이자, 즐겁디 즐거운 울음이었다. 식이 끝나자 정 추기경은 “새 사제의 부모님들은 일어나세요”라고 하더니 “여기 계신 부모님들이 자신보다 더 아끼는 아들을 하느님께 바쳤다”고 말했다. 새 사제들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도 아는 듯했다. 예수를 향한 길, 이제 시작임을 말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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