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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N.P"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N.P』를 읽었다.읽어 버렸다.나의책읽기 버릇대로라면 읽어선 안되는 작품이었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은 읽지 않는게 버릇이다.그걸읽어 버리면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져버리니까.그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참고 있다가 마침내 뭔가 또하나 나왔다는 소문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자리에 처박혀 묵은 소설을 게걸스럽게 읽어나간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며 『티티새』며 『푸른방』『슬픈 예감』을 다 그런 식으로 읽었다.그런데 『N.P』에 와서 말하자면 규칙을 위반한 셈이다.이제 내 책꽂이에는 내가 읽어야 할그의 새로운 소설이란 없다.유혹에 넘어간 자는 실로 행복하지 않다. 무엇이 그토록 참지 못하게 했을까.말할 것도 없이 그의소설이 갖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나는 그 매력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는데 그래서 소설을 읽어 봤다는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했다.『뭐야,순정만화 같은 소설이잖아』란 식이었다.
그런가.가만 생각하니 그런 것도 같다.하지만 나를 휘어잡고 흔드는데 순정만화면 어떻고 무협지면 어떤가.그것이 나의 결락된부분들을 속속 채워준다면,그래서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라면 신파라 한들 대수겠는가.
어쩌면 나는 모종의 모반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의 소설을 즐겨읽었는지도 모른다.소설에서 뭔가 의미 깊거나 거창한 걸 이끌어내려고만 했던 내 해묵은 독서 태도에 대한 모반.
『N.P』는 그가 지금껏 여러 소설 속에서 얘기해왔던 근친상간과 레스비언과 존재에 대한 연민들로 가득 채운,결정판이면서도그것들을 애써 뛰어넘으려고도 하지 않은 평작이다.우연히 아버지를 사랑하게된 나이어린 소녀의 문제적 아이덴티티 를 독특한 성격 묘사와 기묘한 상황설정을 통해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드러내는 방식 자체는 문제적이지도 않고 웅변적이지도 않다.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논법과 수사 따위를 동원하지도 않는다.그냥 스윽 읽히고,다 읽고 나면 감동임이 분명한,알싸하고 신산한 슬픔이 앙금처럼 남을 따름이다.그걸 나는 매력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소설이 그만하면 됐지 않은가.
『N.P』란 북극점(North Pole)의 약자인데 왜 그런제목을 붙였는지 알 수도 없지만 궁금하지도 않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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