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정신세력의 확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해 평화운동을 하는 베트남의 틱 나탄 스님이 한국에 왔다.변선환(邊鮮煥)목사님의 주선으로 만난 일이 있다.스님은 그날평화 운동의 하나로 행선(行禪)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우리는손을 합장하고 오솔길을 조용조용히 걷기 시작했 다.참으로 오롯한 시간이었다.
한참을 걷다가 스님은 걸음을 멈추었다.하늘과 땅을 쳐다보았다.나무와 꽃도 쳐다보았다.그리고 또 걸었다.
뒤에 스님은 이런 말을 했다.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부처님,저 여기 있습니다』하면서 걷는다는 것이다.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쳐다보면 거기에 부처님이 함께하는 평화의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불법(佛法)을 닦는다.불법을 닦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닦는다는 뜻이다.자신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비워버린다는 뜻이다.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체의망상(妄想)을 놓아버린다는 뜻이다.
망상을 놓아버릴 때 거기에 한 맑은 기운이 어린다.이를 일러청정일념(淸淨一念)이라 한다.이 청정일념이 바로 정신의 세력인것이다. 정신세력이 확장되는 곳에 평화의 세계가 건설된다.따라서 어떠한 신앙과 수행도 평화의 세계건설에 힘이 되지 못한다면그 신앙과 수행은 무가치한 것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엔 아직도 탁한 기운이 곳곳에 범람하고 있다.
종교계는 어떠한가.한국 종교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복(祈福)주의.물량주의.팽창주의는 종교계의 3대 탁한 기운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다(多)종교 사회다.다행히 오늘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이름으로 민족이 분열됐거나 전쟁이 일어난적은 없다.오히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힘을 합해 나라를 구했으니 이는 우리 종교계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그러나 지금 종교계에 갈등의 징조가 싹트고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팽창주의라는 비정신적인 탁한 기운이 겹겹이 휘감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탁한 기운은 언젠가는 폭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종교의 본래 정신을 생각할 때다.
원불교를 세운 소태산(少太山)대종사님을 어느 날 예수교의 조송광 장로가 찾아온 일이 있다.조장로께서 사뢰기를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말세에 다시 오시되 도둑같이 왔다 가리라 하였고,그때에는 여러가지 증거도 나타날 것이라 하였사오니 참으로 오시는 날이 있사오리까.』 이에 대답하시기를 『성현은 거짓이 없나니 그대가 공부를 잘 하여 심령(心靈)이 열리고 보면 예수님의다녀가는 것도 또한 알리라.』 이러한 문답을 수없이 주고받던 중 조장로는 크게 감동하고 『제가 오랫동안 큰 스승님을 기다렸습니다.오늘 대종사를 뵈오니 마음이 흡연(洽然)하여 곧 제자가되고 싶나이다』라며 큰 절을 올리게 된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는 『예수교에서도 예수님의 심통(心通)제자만 되면 나의 하는 일을 알게 될 것이요,내게서도 나의 심통 제자만 되면 예수님의 한 일을 알게 되리라.모르는 사람은 저 교,이 교의 간격을 두지만 참으로 아는 사람은 때 와 곳을 따라서 이름만 다를 뿐다 한 집안으로 알게 되나니라』고 말씀하신다(대종교 전망품 14).
정신의 세력이 쇠약해가는 이 시대에 한 주를 열면서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본다.
◇필자약력▶61세▶원광대 원불교학과졸▶휘경여중교장▶원불교광주교구장.서울사무소장.현 교정원장겸 수위단원 중앙단원 趙正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