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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통폐합실상은이렇다>2.統廢合 발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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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0년 당시 우리는 언론조치를 「언론 개혁」이라고 불렀습니다.건전 언론 육성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지요.』 TBC(동양방송)강탈등 언론 통폐합을 사실상 주도한 허문도(許文道)전통일원장관은 88년 국회 언론청문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신군부는 12.12를 「우발적 사건」이라고 우기는 것처럼 통폐합도 사회정화 차원에서 추진된 조치였다고 강변한다.
『지방에서 사이비 기자의 폐해가 심했고 매스컴의 상품화를 비판하는 의견이 각계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됐습니다.정권 입장에서 이런 요구를 수용해야 했지요.』 허화평(許和平)의원이 주장하는통폐합의 정당성.
하지만 이의 본질은 권위주의적 정권의 상투적 언론통제술이었음이 검찰수사 등에서 증명됐다.
학계에서는 금세기 언론 통제의 효시를 이탈리아의 파시즘에서 찾는다.무솔리니 정권은 권력에 방해되는 언론기관을 없애고 보도지침을 하달했다.
이는 1930년대 독일의 나치즘과 결합하면서 좀 더 세련된 형태로 나타난다.이름하여 괴벨스(나치 선전계몽부 장관)의 선전술. 괴벨스는 신문편집지침법을 제정,히틀러에 동조하지 않는 신문 1천여개를 폐간했다.또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을 권력의 충실한 시녀로 만들었다.
그의 언론관은 30년대 군국주의가 지배하던 일본으로 넘어갔고80년 한국에서 돌출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언론통제술은 ▶통폐합▶규제법 제정▶통제기관 설치▶보도지침 하달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언론 통폐합→언론기본법 제정→홍보조정실 설치및 보도지침 배포로 이어진 신군부의 언론조치도맥을 같이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신군부의 언론조치는 형식과 내용면에서는 일제 군국주의의언론정책과 「일란성 쌍둥이」라고 부를 만하다.
〈표 참조〉 우선 통폐합의 원칙이 유사하다.일제는 중일전쟁을앞두고 통신사들을 하나로 통합했다.이어 지방지 1현(縣)1지(紙),중앙지 5개의 원칙에 따라 신문들을 모두 통폐합했다(신군부의 당초 기준은 ▶통신사 1개▶지방지 1도1사▶중앙지 6개 였다). 「자율을 가장한 타율」이라는 처리 방식 역시 똑같다.
일본 신문회의 「자율 결의」형식을 한국신문협회도 그대로 따랐다. 신군부가 일본과 독일의 언론 통제술을 참고했다는 주장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언론 통폐합 전후 신군부 한 실세의 청와대 집무실에 찾아 갔지요.책꽂이에 제3제국의 언론 홍보술(괴벨스의 선전술)을 모아놓은 일본어판 전집이 꽂혀 있었습니다.호기심이 발동해 「왜 그런 것을 보느냐」고 묻자,그는 책을 가리키며 「 연구가치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의 전기(傳記) 『황강에서 북악까지』발간문제로 청와대를 드나들었던 출판인 K씨의증언. 언론 통폐합의 본질은 이같이 절대 권력의 흔한 언론통제술이었다.그 목적은 물론 정권장악및 유지에 있었음은 말할 것도없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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