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칼럼>월드컵 공동개최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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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울고 싶을때 뺨을 때려주는 격」으로 북한의 월드컵 남북공동개최 제의는 그 절묘한 타이밍의 연출이 압권이었다.다분히 계산된,그러나 남의 의표를 찌른 북한의 돌출은 애틀랜타올림픽의 지각참여 결정과 아울러 뒤통수를 갈기듯 동시다발로 세계스포츠 무대를 순식간에 혼돈으로 몰아갔고,그 저의를 캐느라 평양의 풍향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의 돌연한 제의가 나왔을때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2002년 월드컵축구 유치를 위해 한.일간의 자존심을 건 격렬한 한판의 로비가 북중미축구연맹이 주최하는 골드컵기간중에 전개되고있었으며 아벨란제 국제축구연맹(FIFA)회장,요 한손 유럽축구연맹회장 등 8명의 집행위원들을 대상으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접근전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었다.50대50의 대등한 조건아래 이전투구하고 있는 한.일간의 저울대가 명분하나로 승패가 판가름날 판이고 보면 북한의 남북공동개최 제의는 천금의 무게를 한국쪽에 실어준 셈이다.일본의 가와부치 사부로 유치위 부위원장이 『지금 이 시기에 북한이 남북공동개최안을 보낸 의도를 모르겠다』고 탄식한 말이나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이제 일본으로 하여금 포기하도록 권유하 겠다』고 한말은 바로 저간의 사정을 반영하는 좋은 예다.
나무 위에 올려 놓고 흔들어댈지는 모르지만 지금 궁금한 것은북한의 저의다.애틀랜타올림픽의 때늦은 참가신청이나 월드컵유치의돌연한 추가 제의가 모두 상궤를 벗어난 행동이며 김일성사망후의정정불안과 국제적 고립,그리고 식량.에너지. 외화의 3난이라는체제존망의 위기속에서 북한이 그동안 철저히 외면했던 스포츠에 국가적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 오히려 난해한 처신으로 비치기 때문이다.항간에는 카터 전미대통령의 주선과 애틀랜타 조직위의 비용부담으로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 하게 됐다는 설,또 북한 살리기에 나선 미국이 한국의 완강한 반대를 무마하는 대가로 월드컵문제를 거론하게 됐다는 설도 만만찮게 일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월드컵 공동개최안은 신뢰할 만하다는 추측도 일고 있다.
북한은 일반적인 상식이나 논리와는 늘 어긋나는 행태를 보여주는 체제다.그것은 도쿄올림픽의 단일팀 구성,서울올림픽의 공동개최 등이 모두 용두사미로 끝났고 남북간에 거론된 모든 현안이 늘 막판에 뒤집히든가 전혀 엉뚱한 쪽으로 결말이 난 경우 웅변해주고 있다.
남북공동개최에 관해선 시한인 오는 6월1일까지 FIFA의 정관개정(1국원칙)이나 마스터플랜의 재작성,현지조사등 복잡한 절차를 거칠 겨를이 없다.다만 축구를 통해 평화를 추구한다는 월드컵의 목적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극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설혹 북한이 어떤 불순한 동기로 공동개최를 제안했다 하더라도결과적으로 한국의 입장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과감하게 수용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해결에 나선다면 의외로 대어를 낚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 늑대가 출현했을때 사람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고 소년을 외면했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만약을 위해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정회장이 일본에 포기를 종용하겠다고 나선 그같은 선상에서 나는 일본에 대해 결자해지하라고 권하고 싶다.남북공동개최 운운의바탕엔 민족분단의 아픔이 깔려있고 분단의 원인은 일본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KOC위원.언론인〉 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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