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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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혼했다는 말은 결국 하지 못했다.서여사 옆에 김사장이 대령해 있었고 할아버지 소장품에 관한 책 원고며 편집 계획서들이 즐비하게 들이밀어지는 바람에 그럴 염의도 내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서요?』 총기 좋은 서여사가 잊지 않고 물었으나 얼버무렸다.
『시동생 혼인 문제가 생겨서요….』 『아,정길례여사 따님과 얘기 있었던 그 총각인가요?』 서여사는 그들이 맞선 본 것을 알고 있었다.
『좋은 아내는 가장 좋은 가구다…라는 덴마크의 속담이 있어요.「가구」하면 덴마크니까 그런 속담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처음엔그 말에 거부감을 느꼈지요.하지만 「좋은 가구」처럼 신실한 반려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요즘에야 알 것같애요.천 천히 잘 고르시라 하세요.』 그러고보니 서여사는 덴마크제 독서의자와 썩 잘어울려 보였다.
『아주 편안해 보이십니다.』 의자에 앉은 서여사에게 김사장이말을 걸었다.
『그래,너무 편해서 독서가 제대로 될까 몰라.』 서여사는 아들의 높은 안목에 크게 만족하는 눈치였다.
집에 돌아와 놀랐다.덴마크에서 온 짐이 방금 마루로 옮겨지고있었다. 린드그랜여사 전시회에서 본 인어공주 가리개였다.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오려 붙인 환상적인 작품이었다.분명히 「비매품」 딱지가 붙어 있던 것인데 웬일일까.
코펜하겐의 린드그랜여사 집으로 전화했다.그곳은 아침이었다.커피와 우유를 반씩 타 카페오레를 만드는 중이라며 린드그랜여사는반색했다.가리개는 특별히 공들여 만든 것이어서 팔지 않으려 했는데 우변호사가 어찌나 조르는지 할 수 없이 팔 기는 했지만 사랑의 선물로 팔린 것이니 행운의 작품이라며 웃었다.
아버지에겐 린드그랜여사의 선물이라 말하겠다고 하자 그녀는 톤을 낮추어 속삭였다.
『사랑은 「기회」의 티켓을 매번 끊어주진 않아.기회를 놓치지말아요.』 그 말이 내내 귀 안에 맴돌았다.
우변호사가 보고 싶었다.그의 눈길,그의 목소리,그의 손길….
그의 모든 것이 그리웠다.
내일 아침은 새벽같이 집을 나서야 한다.도움이 아줌마와 애소를 한방에 거처하게 하고 일찌감치 자리에 들었으나 영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 낮꿈이 생각났다.꿈에서 얼려 실제로 쾌감을 느끼기는 생전 처음이다.사랑은 참으로 희한한 영육(靈肉)의 합일이 아닌가.감미로운 육신의 발돋움에 몸부림쳤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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