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프리즘>"내일로 흐르는 강"연출 박재호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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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박재호 감독(38)은 84년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그해춘천MBC에 카메라 기자로 들어갔다.
그러나 넉달만에 사직서를 낸 그는 이듬해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공부를 했다.
이후 졸업과 함께 임권택감독의 연출부에 들어가 2년동안 『티켓』『씨받이』『연산일기』『아다다』등 네편의 영화를 만들었다.90년 데뷔작인 『자유부인』이 실패한 뒤로는 영화에 회의를 느껴비디오프로 제작업체에 들어가 가전제품 교육용 프 로를 주로 만들었다. 영화를 포기하고 냉장고와 세탁기의 성능을 연구하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실험적인 동성애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을내놓았다.
-어떤 생각에서 동성애 영화를 만들게 됐나.
『91년 이미 「내일로 흐르는 강」의 시나리오를 써 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성애 부분은 없었다.
근.현대를 거쳐오면서 파괴된 가족관계를 다룬 1부가 전부였다. 동성애를 담은 2부는 지난해 1월 시나리오 수정작업때 추가로 삽입했다.가족관계로만 끝나면 너무 진부할 것같았고 동성애가요즘 국내에서도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어 관심을 끌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지금까지 금기시된 소재인데 부담감 같은 것은 없었나.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다만 어떻게 하면 추하지 않게 그려낼까 고민했다.그래서 현실에 최대한 가깝게 그리면서도 유머를가미했다.
시사회때 젊은 관객들이 몰려와 가슴 뭉클했다는 얘기를 해주었을때 기뻤다.』 -동성애 장면이 상당히 현실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감독이 혹시 동성애 체험이 있는게 아니냐는 의문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었다.질문 자체가 웃긴다.
조직폭력배 체험이 있어야 조직폭력배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다.동성애자들에게 관심을 가진 건 92년초 잘 아는 후배 소설가가 취재해야 하는데 함께 가자고 해 게이바에 가면서부터다.첫날은 그 후배와 계단에서 서로 먼저 들어가라면서 망 설였다.
그후 몇번 더 가게 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게 됐고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동성애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언론이든 비평이든 「내일로…」을 너무 동성애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내일로…』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목소리는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지금은 사라진 대가족제도의 따뜻한 인간관계 같은 것이다.영화속의 동성애 관계도 애인이라기보다 가족관계 같은 것이다.극중 동성애자들은 연인을 찾고 있는 게 아니라 따뜻한 아버지,따뜻한 형,따뜻한 동생을 찾고 있다.관객들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평론가들은 박감독이 예술영화쪽으로 가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제인 캠피온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재미가 있고 성-가족-사회의 범주를 아우르는 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당장은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하고 싶다.젊을때 실험을 많이 해야 나이 들어 세련된 리얼리즘을 구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 고 있다.』박감독은 영화 두편을 만드는 동안 유산으로 받은 아파트 한채를고스란히 날렸다.
왜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왔느냐고 하자 헤어질 수 없는 애인같아서라고 한다.
그러나 「변덕 심한」영화와 정반대인 넉넉한 그래서 안기면 푸근함을 느낄수 있는 맏며느리 스타일을 아내로 맞았으면 좋겠다고했다.
글=남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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