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대신 시간제·용역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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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지난해 7월 말 이전까지만 해도 사무보조 업무를 하는 15명의 계약직 사원이 있었다. 이들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7월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임금은 정규 일반직 초임을 적용했다. 파견업체 소속으로 연구소에서 일하던 직원 임금도 같은 수준으로 올렸다. 연구지원팀 조장휘 차장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압박이 커져 이런 조치를 취했다”며 “해당 근로자들은 임금이 25%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늘어난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파견 근로자 수를 줄였다. 124명이던 파견 근로자가 지금은 101명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임금을 올려 주면서 생긴 부담을 인력을 줄여 해결한 것이다. 조 차장은 “기간제나 파견 근로자의 처우가 향상된 부분은 있지만 일자리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부문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이 30일로 1년이 됐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처럼 많은 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통계청이 올 3월 기준으로 한 경제활동 부가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지난해 3월 577만 명에서 564만 명으로 줄었다. 비정규직은 지난해까지 매년 늘어왔다. 대신 정규직은 996만 명에서 1036만 명으로 4% 늘었다. 노동부 박화진 차별개선팀장은 “비정규직의 고용이 안정돼 가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시간제·용역·파견 근로자와 같은 열악한 환경의 근로자는 늘어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격차도 커졌다.

◇“불규칙한 계약으로 정규직화 피하자”=주택금융공사에서 2년4개월 동안 일한 김형일(37)씨는 이달 3일 “30일자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회사로부터 받았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 16명도 같은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그동안 회사와 네 번 계약했다. 11개월짜리로 두 번하고, 6개월과 2개월짜리로 각각 한 번 했다. 이 회사 조현곤 인사부 파트장은 “(김씨는) 상시업무에 배치된 비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는 “회사는 계약기간을 짧게 반복해 ‘돌려막기’를 해오면서 상시 업무가 아니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비정규직보호법을 시행하기 전인 2006년 8월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계약기간을 반복하는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 중 2년 이상된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정했다. 이 회사의 비정규직 113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람은 3명이다.

기업들은 정규직 전환의 부담이 있는 계약직 대신 시간제나 용역·파견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6월 23일 시작된 이랜드 비정규직(계산원) 근로자의 농성도 이들을 용역회사에 도급을 주고 파견 받는 형태로 근로계약을 변경하면서 촉발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 부가조사 결과 시간제나 용역·파견 근로자는 지난해 3월 224만4000명에서 올 3월 233만 명으로 약 8만6000명 늘었다.

비정규직의 고용 질은 더 나빠지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올 3월까지 평균 임금은 127만2000원이었다. 정규직(181만1000원)의 60.5% 수준이다.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정규직 임금의 64.1%였다. 시간제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26.5%인 55만8000원에 불과했다.

◇법 개정 목소리 높아=정부와 한나라당은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파견 허용 업종을 푸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기획홍보본부장은 “3년간 일을 한 비정규직은 숙련도와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도 정규직 전환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직 중심 노조의 양보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임금을 동결하고, 인상하지 않은 돈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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