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세계의 영웅 신화" 조지프 캠벨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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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조지프 캠벨의『세계의 영웅 신화』를 읽고 있으면 유아기에서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었다 늙어 죽는 우리의 한 평생은 그 자체가 거대한 서사시라는 생각이 든다.
유아기 때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이 세계의전부고,또 그 세계는 완전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우리는 성장해 감에 따라 가정이라는 세계가 바깥 세상에 비해 얼마나 조그맣고 불완전한 세계인가를 깨닫게 된다.여태까지 알고 있던 세계가 자기 자신을 떠받쳐 주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날 수밖에 없다.아이들은 그래서 새로운 친구를 찾고 부모의 세계를 떠나 자신들의 세계로 향하여 나가게 된다.
캠벨의 말대로 영웅이란 자신이 잘 알고 있던 세계의 모순과 속박을 깨닫고는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 보다 나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존재다.이런 의미에서 부모의 세계를 떠나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아이들은 영웅 그 자체다.그들 을 이해하지못하고 자기 곁에 계속 잡아두려는 어머니의 존재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해 영웅이 퇴치해야 할 괴물이다.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다프네나 요정의 사랑을 마다한 나르시스와 같은 존재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세계에서 떠나기를 거부한 실패한 영웅들로서 결국 나무와 꽃으로 변신하고 말았다.결단이 없는 곳에 삶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독립된 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모험을 하게 된다.
특히 사춘기를 거치고 성인이 되어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서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맞아 살 것이며,어떤 직업을 택해 살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결정해야 한다.모든 것을 불확실성 속에서선택해야 하는 것이다.미지 세계에 대한 이런 선 택 행위는 영웅이 겪어야 할 모험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생의 전반부는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문제에 대한도전의 연속이다.그러나 가정을 꾸리고 직장 생활도 안정돼 가면새로운 위기가 다가온다.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권태롭게 느껴지고인생의 새로운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아이들이 성장해 제 갈 길로 떠나가고 나면 허무함이 갑자기 느껴진다.죽음이 우리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한다.중년의 위기가 온 것이다.영웅으로서 임기가 끝난 것같은 불안에 빠지게된다.그러나 이때야말로 또 한번 미지의 세계로 자신의 삶을 이끌고 갈 영웅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중년에 들어선 나 역시 또 한번의 멋진 모험을 하고 싶다.
(한국외국어대 교수) 유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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