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公正委 '수술전 각서'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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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각서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계기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술전 환자동의서에 관한 약관개정안 발표다.지금까지 각서는 병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어떠한경우에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수술을 앞둔 환자를 또한번 움츠리게 하기에 충분한 표현이다.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어떠한 경우」라는 기존 문구 대신 「의사의 책임이 없는 경우」를 삽입하는 것.
너무나 당연한 개정이 이제서야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번 공정위의 발표는 오히려 빛바랜 느낌마저 있다.
문제는 의료분쟁때 이른바 의사의 책임이 없는 경우를 의료 문외한인 환자가 어떻게 입증해내느냐 하는 것이다.이 점에 대해선사법부가 정답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의료사고와 관련된 판례경향이 각서유무에 상관없이 먼저 의사의 무과실 입증책임부터 묻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전에는 환자가 의사의 잘못을 찾아내야 승소하는 시대에서 이젠 의사가 직접 자신의 잘못없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권원용(權源庸)변호사는 『약자에 해당하는 환자를 우선 보호하는 것이 최근 잇따른 환자승소판례에서 엿보이는 법원의 입장』이라며 『수술전 각서는 사실상 법적효력을 상실한지 오래』라고 단언했다. 결국 각서를 썼기 때문에 병원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며 각서가 재판과정에서 환자측에 불리하게작용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무의미한 각서를 대신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바로 의사들이갹출하는 공제회비에서 제도 적으로 보상하는 의료분쟁조정법안이다.그러나 정부와 의사단체간 첨예한 대립으로 국회에서 표류중이다. 이유는 의사의 과실이 있을 경우 형사책임 면제를,무과실의 경우엔 국가(의료보험조합)에서 피해보상을 해줘야한다는 의사들의나름대로 근거있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발생은 해마다 통계숫자로 입증되는 불가피한 상황임을감안,불필요한 각서와 법정싸움 대신 현실적인 보상이 가능한 의료분쟁조정 법안이 하루빨리 입법화돼야 할 것이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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