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인생’ 30년 2분21초에 요약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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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04면

‘신(神)은 곧 말씀’이라는 말이 있다. 신의 언어는 시(詩)일까 산문일까.

빌 게이츠 퇴임 연설의 수사학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신과 같은 존재인 빌 게이츠 MS 회장의 퇴임식은 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 방식으로 진행됐다. 8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발표와 질의응답, 마무리 발언이 있었다. 오전 9시 시작된 행사는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의 마무리 발언(concluding remarks)은 2분21초였다.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게이츠는 자신의 MS 인생 30년을 담아냈다.

빌 게이츠의 연설들은 외국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다. IT업계 흐름이나 MS 제품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는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쏟아내곤 한다. 구어체라 당연히 문법에 맞지 않는다.

이번에 그는 기회(opportunity)·변화(change)를 화두로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경고했다.

9시20분 연단에 선 게이츠는 IBM과 MS 간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을 회고하고, 오늘날의 치열한 경쟁 상황에 대해 말했다. ‘앞으로도 소프트웨어 분야에 MS가 집중하는 게 절실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말했다. “우리에겐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We have so many opportunities to surprise people.)”
게이츠는 ‘위기와 단결’의 함수 관계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에도, 어떤 면에선 말이죠, 바로 그런 때가 우리를 단결시키는 때입니다.(Even the times that were the toughest, in some ways, those are the ones that bond you the most.)”

재능 있는 사람이나 노력하는 사람도 재미 때문에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흥겹고 신나게 일할 때 위대한 일이 가능하다. 빌 게이츠도 이 진리를 확인했다. “여러분 덕에 너무나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하루하루 우리 회사와 우리 회사가 하고 있는 위대한 일에 대해 생각할 것입니다.(You’ve made it so much fun for me. There won’t be a day when I’m not thinking about Microsoft and the great thing that it’s doing.)”

감사하는 마음은 또 다른 감사하는 마음을 낳으며 전염된다. 빌 게이츠의 뒤를 이을 스티브 발머는 환송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빌에게 어떻게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진짜 엄청난 기회를 줬습니다. 빌은 우리 회사의 창업자입니다. 빌은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빌에게 마치 자식과 같습니다.(There’s no way to say thanks to Bill. We’ve been given an enormous, enormous opportunity. Bill’s the founder. Bill’s the leader. This is Bill’s baby.)”
빌 게이츠가 발언을 끝내자 CEO인 스티브 발머는 게이츠와 관련된 각종 사진과 자료가 담긴 스크랩북을 증정했다. 둘은 흘러내리는 눈물과 싸웠고 사원들은 환호했다. 그 순간 게이츠와 MS 사원 간에 가장 밀도 높은 소통이 이뤄졌을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신(神) 빌 게이츠의 ‘말씀’은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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