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행진 ! 와이키키 브라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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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1년 개봉했던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까만색 교복을 입고 'Come Back'같은 팝송을 흥얼거리던 이십여 년 저쪽 학창시절의 풍경을 끄집어내 관객들의 회고 정서를 불러 일으켰다. 영화가 단순한 추억상품에 머무르지 않았던 이유는 지리멸렬, 세상의 변두리로 내몰린 주인공들의 남루한 현실이 '빛났던 과거 한 때'와 강렬하게 대비됐기 때문이다.

영화를 바탕으로 한 토종 뮤지컬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감동을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영화와 동일한 전략을 취한다. 불행한 현실로 인해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더더욱 아름다운.

물론 미세 조정은 있다. 영화에서는 고교 시절 밴드 중 성우만 밤무대에서나마 음악을 계속하는 반면 뮤지컬에서는 정석과 강수까지 세 친구가 고스란히 한 팀으로 남았다. 'YMCA''빌리 진', 싸이의 '새' 등 뮤지컬에만 삽입된 곡들은 무대 공연에 걸맞게 한층 흥겨워진 느낌이다.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는 것은 현재를 배경으로 한 2막에 들어서다. 남학생 밴드 '충고 보이스'의 라이벌이었던 여학생 밴드 '버진 블레이드'의 보컬 인희는 학창시절 누구보다 노래를 잘 불렀으나 지금은 이혼 후 채소 행상을 하고 있다. 맘껏 날개 한 번 펴보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성우에게 인희는 묻는다. 행복하느냐고. 인희의 질문은 빛바랜 꿈이나마 간직하고 있는 관객 모두를 향한 것이 된다. '7080' 노래들의 공세 속에 관객의 심정을 아련하게 한다.

24일 저녁 공연에서 인희역을 맡은 김선영의 목소리는 공연장인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휘어잡고도 남았다. 영자역의 박준면은 특유의 항아리 체형에 재치있는 연기로 공연 중반 무렵에는 일거수 일투족이 웃음을 유발할 만큼 객석을 사로잡았다. 일사불란한 군무에서는 많은 연습량이 엿보였다. 지난해 두 차례의 공연보다 한층 안정된 느낌이었다. 공연 막바지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환호했다. 커튼콜이 나왔지만 오히려 배우들이 익숙지 않은 듯 춤 순서를 놓치기도 했다. 5월 8일까지. 4만~7만5000원. 02-3141-1345.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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