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은 혹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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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15면

덤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백화점 사은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백화점에서 가령 10만원에 1만원 상품권을 주는 행사를 하면, 필요한 물건을 사도 그 금액에 못 미칠 때가 있다. 그러면 금액을 딱 맞추려고 다른 물건을 찾아서 사느라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동네 수퍼마켓에서도 두부에 키친타월이라도 하나 붙어 있으면 얼른 집었다. 잡지 값의 몇 곱절이나 되는 화장품이 독자 선물로 나오면, 내가 쓰지 않을 것이라도 사곤 했다. 기왕 사는 것, 덤이 있는 물건을 사면 횡재라도 한 것 같고, 잘 산 것 같고, 알뜰하게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요긴한 물건을 덤으로 받을 때도 있기는 하다. 우리 집 그릇은 거의 다 잡지 부록이나 백화점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다(친구들은 내가 그릇 욕심까지 있었다면 이미 빚더미에 앉았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나도 그릇 욕심 없기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받은 물건치고 제대로 쓰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전에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정리한 적이 있다. 찬장 한 칸에 밀어넣어 둔 것을 꺼내는데,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었다. 수퍼마켓에서 이런저런 물건에 밀폐용기가 덤으로 붙어 있으면 앞뒤 재지 않고 덥석 집었으니 그럴 만했다.

밀폐용기뿐일까. 쓰지 않는 책상 한 쪽에는 이래저래 덤으로 받아서 전혀 쓰지 않을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다. CD나 DVD는 사은품 때문에 사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야 할 것에 덤으로 붙어 있는 티셔츠들은 한 번밖에 입지 못하고 헌 옷 수거함에 넣게 된다. 덤이라는 게 결국 혹이다.

전에는 잡지 부록 같은 것에 관심도 없다가 나의 꾐에 넘어가서 백화점 사은품과 잡지 부록을 꼬박꼬박 챙기던 친구가 있다. 나도 반성하고 있던 차에 그 친구가 나한테 말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 않는 게 옳다고. 맞는 말이다.

물론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눈앞에 보이면 공짜처럼 느껴지고 공짜를 마다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덤에 대한 욕심을 끊자는 것만이 아니다. 내 관심은 도시에서 건강하게 살림을 하는 데 집중돼 있는데, 생활을 편하게 해준다면서 계속해서 욕구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물건들은 대개 환경과 건강에는 해롭기 마련이다.

어디 살림살이뿐일까. 끝없이 욕망을 만들어 내는 물건을 계속 생산하고 소비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지구를 고갈시킨다. 그러나 거짓 욕망의 힘은 너무 세다. 바르게 살기란 참 힘들다.


글쓴이 조동섭씨는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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