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가스실 운명 피할 수 없게되자 200명 천사 위해 희생한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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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천사들의 행진
강무홍 글, 최혜영 그림, 양철북, 48쪽
1만800원, 초등 저학년

거울의 거리
아르난도 호세 세께라 지음, 발터 소르그 그림, 정
길호 옮김, 지호어린이, 28쪽, 9500원, 초등 저학년

1942년 8월 유난히 더운 날.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거주지)에 있는 고아들의 집에 나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아버지’ 코르착은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자, 지금부터 여름휴가를 가는 거야. 가다가 길을 잃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줄을 잘 맞추어서 가도록 하자.”

200명 남짓한 아이들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제일 좋아하는 책이나 장난감을 넣은 푸른 가방을 맨 뒤 ‘아버지’와 함께 소풍을 떠나듯 길을 나섰다. 그리고 나치가 유대인 말살을 위해 세운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가스실로 가는 기차에 다 함께 몸을 실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주연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에 나온 아버지 ‘귀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코르착의 이야기는 실화다.

『천사들의 행진』은 폴란드 고아의 아버지이자 어린이 인권의 주창자로 불리는 야누슈 코르착(1878~1942)이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택한 이야기를 다뤘다. 어린이 교육자이자 아동서적 저자, 그리고 소아과 의사였던 코르착은 피신 제의를 받았지만 아이들을 버릴 수 없었다. 착하고 똑똑했던 그 천사들은, 그러나 나치 수용소에서 연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원래 그는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의사가 됐지만 ‘의사도 가난은 고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아원을 맡아 아이들을 세심하게 보살폈다. 당시 유럽에서 교육 개혁자들이 추구하던 어린이 공화국 제도를 고아원에 도입했다. 스스로 공동체에 필요한 질서와 규칙을 꾸려가는 제도 안에서 누군가 규칙을 어기면 어린이 법정을 통해 스스로 잘못을 고쳤다.

코르착은 잘못을 저지른 소년들을 변호하는 데도 앞장섰다. “비행 소년도 소년입니다. 이 어린이는 자신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뿐입니다. 아이를 버려서 이렇게 행동하게 만든 것은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세상을 모르는 어린이를 이끌어주는 일은 아이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어린이는 건강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59년 11월 2일 유엔총회는 어린이 인권 선언을 제정했다.

『거울의 거리』는 “어린이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제 2조의 내용을 담은 인권 동화 시리즈다. 소녀 로레나는 가난하고 게으르며 더러운 ‘거울의 거리’에 산다. 씻지 않은 얼굴, 헝클어진 머리…. 로레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던 담임 선생님은 어느 날 소녀에게 깨끗한 옷을 선물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로레나의 아빠는 연장통을 챙기더니 오랫동안 망가져있던 세면기 수도꼭지를 고쳤다. 엄마는 깨끗한 식탁보를 깔고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살만한 집으로 변한 것이다. 이웃들도 이들을 본 뒤 집안과 거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거울의 거리’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아름다운 도시로 변했다. 놀라운 변화의 시작은 작은 선물에서 비롯됐다. 세심한 관심이 어린이를 바꾸고 그를 둘러싼 환경도 달라지게 만든 것이다.

‘쉿~!’ 로레나의 담임 선생님은 사실 우리들의 엄마일지 모른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코르착의 모습은 우리네 평범한 아버지들의 뒷모습에서 끝없이 목격되지 않을까.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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