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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세운상가 … 사진에 담은 41년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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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67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이 준공 축하 테이프를 자르던 모습<上>. 80년대까지만 해도 세운상가는 최신 전자제품을 찾는 사람들로 붐볐다<中>. 최근 종로 쪽에서 바라본 세운상가의 전경. 서성광씨가 찍었다<下>. [문화우리 제공, 중앙포토]

‘세계의 기운을 모은다’는 뜻의 세운(世運)이란 이름으로 1967~68년 서울 도심 한복판에 들어선 거대한 상가군. 잠실주경기장·타워호텔·아르코미술관 등으로 한국 건축사에 큰 획을 그은 건축가 고 김수근(1931~86년)씨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설계한 건물이다.

그러나 올해가 지나면 서울 시민들은 더 이상 예전의 세운상가를 만날 수 없게 된다. 서울시가 연내에 종로 쪽에서부터 세운상가의 철거에 들어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40년 넘는 세월과 추억이 깃든 세운상가의 마지막 모습은 곧잘 카메라에 담긴다. 사단법인 문화우리(이사장 임옥상)의 ‘도시경관 기록보존’ 프로젝트에 참여한 26명의 아마추어 사진가도 이런 사람들이다. 이들이 찍은 사진은 다음달 1일까지 ‘세운상가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된다.

◇세운상가의 짧았던 영화=66년 당시 45세였던 김현옥 서울시장과 35세의 젊은 건축가 김수근씨는 서울 중심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세우자고 의기투합한다. ‘불도저’라는 별명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기로 유명했던 김 시장은 현재 세운상가 자리에 있던 사창가를 밀어버리고 그 땅을 활용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직접 붓을 들고 ‘세운상가’라는 휘호를 지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14달러에 불과했던 시절, 시민들에게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남북으로 1㎞나 이어지는 세운상가는 경이로운 건물이었다. 67년 11월 세운상가 북쪽 건물의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해 축하 테이프를 끊었다.

그러나 세운상가의 영화는 짧았다. 70년대 후반 롯데·신세계·미도파백화점을 중심으로 명동 상권이 커지면서 세운상가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80년대 들어 세운상가는 ‘빨간책’과 ‘워크맨’으로 통하게 된다. 유하 시인이 “욕망의 이름으로 나를 찍어낸 곳”(『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이라고 표현했듯이 불법 음란물의 온상이란 오명도 얻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 세운상가를 헐고 그 자리에 나무와 풀이 있는 도시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를 3단계로 나눠 우선 1단계로 종로와 붙어 있는 현대상가를 올해 안에 철거하고, 나머지는 내년부터 2015년까지 공원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업비는 모두 합쳐 1조원 정도가 들어간다.

◇세운상가, 최후의 모습=40년 세월의 풍상을 거친 세운상가는 이미 낡을 대로 낡았다. 전시회에 출품된 사진에서도 퇴락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사람으로 치면 마치 ‘영정 사진’을 보는 듯하다.

이번 작업에는 탤런트 조민기씨와 개그맨 이병진씨도 자원봉사 활동가로 참여했다.

조씨는 “어린 시절 백판(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외국 음반)을 구하기 위해 세운상가를 헤매고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훗날 역사의 흔적이 될 만한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떠나간 세운상가 아파트에서 발견한 옛날 전화기·빨랫방망이·다리미·고무신·구두솔과 못난이 인형 등 각종 생활용품도 함께 전시된다. 69년부터 73년까지 창경국민학교를 다닌 김모씨의 성적표, 75년 외국어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한 원모씨의 졸업장, ‘삼풍수-퍼마아켙’이라고 쓰인 낡은 쇼핑봉투 등이 눈에 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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