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과의 전쟁' 4·25 대책] "작전세력 개입…비정상적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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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사실상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과의 전면전에 나섰다. 최근 내놓은 대책만도 초고층 재건축 불허, 안전진단 직권 중지, 세무조사 의뢰, 투기 혐의자 소환조사 등 한둘이 아니다. 더욱이 국세청의 조사 움직임과 경찰청의 조사 등 집값을 둘러싼 관계기관의 압박도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집값을 잡기 위해 전선을 점차 넓혀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난해 말 이후 오름세를 이어가던 재건축 시장은 최근 매매가 사라지고 매도 및 매수 호가의 격차가 벌어지는 등 얼어붙기 시작했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이처럼 강력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 '법대로' 압박=건설교통부는 분양을 목전에 둔 재건축 단지에 대해서까지 구청에서 분양 승인을 받더라도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건교부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재건축 분양가에 초점을 맞춰 "분양가가 높으면 세무조사를 의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주 들어 '시장질서 바로잡기'로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하며 재건축단지 조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서종대 주택국장은 "재건축의 관행과 부동산 시장 질서를 바로잡으면 재건축 때문에 집값이 불안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교부가 다음주부터 서울 압구정동.잠원동 등의 부동산 중개업자와 설계업자, 건설업체에 대해서도 시장 교란 행위를 조사하고 올해 말까지 조사 대상을 수도권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선 것도 정부의 강경 기조를 엿보게 한다. 서 국장은 "집값 불안에 대해 새로운 대책으로 대처하기보다 현행법을 엄격히 적용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며 '법대로'를 강조했다. 현행법에서 허용되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의미다.

건교부가 이처럼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은 그동안 내놓은 대책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교부는 지난 11일 ▶부실 재건축 안전진단과 관련한 직권조사(긴급 안전진단 조사권 발동)▶초고층 재건축 불허(3종 일반주거지역의 층고 30층 내외 규제)▶재건축추진상황점검반 가동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또 13일에는 서 국장이 "건설업계가 여론을 부추겨 집값 불안을 조장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재건축 사업을 막을 수도 있는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시장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코웃음쳤다. 그러자 정부는 강경 대책을 연일 쏟아내면서 "안 믿으면 손해볼 것"이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하고 있다.

◆ 집값 안정이 최우선=집값 대책은 일단 건교부가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건교부 주택국이 대응하는 것을 지켜보자. 집값 안정이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출범 첫해 집값이 잡히지 않는 바람에 서민층의 지지를 잃었다. 2003년 10.29 대책으로 집값을 잡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으나 지난해 말부터 판교 신도시의 분양가가 예상외로 높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분당.용인 등 주변의 집값이 흔들렸다. 그 흐름이 강남권 재건축 단지로 확산됐다. 청와대와 건교부 등 관계부처는 2001년 말 강남권 재건축 단지 아파트 값이 치솟으면서 집값 급등세가 전국을 휩쓸었던 악몽이 재연될까 우려했다. 청와대 측은 임대주택을 꼭 지어야 하는 재건축 단지를 가급적 축소하려는 건교부 일각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월 26일 노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아이들이 집을 살 때까지 집값이 못 올라가도록 꽉 붙잡겠다"고 밝히는 등 집값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 지자체 반발이 변수=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송파구청은 잠실 주공 2단지의 분양을 승인해 정부의 재건축 집값 잡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건교부는 구청의 분양 승인 후에도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송파구청의 밀어붙이기에는 마땅한 대응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잠실2단지를 지목해 강경 자세를 보인 정부로서는 이번 송파구청의 반발이 선례로 작용해 다른 지자체의 연쇄 반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관리처분계획을 취소 또는 중지할 경우에도 민사상 소송은 물론 분양자들의 항의와 시장 혼란을 피하기도 어렵다.

정부의 집값 잡기 노력이 '엄포용'인지 여부는 26일 이후 정부의 행보에 달려 있다. 정부가 분양가 소폭 인하 정도에 만족하고 물러설지, 아니면 잠실2단지를 관리처분계획 취소의 시범 케이스로 삼을지 금명간 가려질 전망이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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