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미국 자회사, M&A로 비상구 찾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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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SK텔레콤의 미국 자회사인 힐리오가 간판을 내린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미국 버진모바일과 힐리오가 합병 원칙에 합의했으며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양사 합병 후 인지도가 높은 버진 브랜드를 쓰게 된다. SK텔레콤은 합병 회사의 지분 20% 정도를 보유하고 추가 투자도 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합병 관련 사안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이 힐리오 간판을 내리고 버진모바일의 경영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간다는 관측이 회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분 참여 정도와 투자 계획 등을 조율하는 일만 남았다는 이야기다. 버진모바일은 버진애틀랜틱항공을 비롯해 200여 관계사를 둔 영국 버진그룹의 일원이다.

이렇게 되면 SK텔레콤이 2005년 미국 초고속인터넷업체 어스링크와 합작 설립한 힐리오는 3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미국 3위의 이동통신 업체인 스프린트넥스텔의 망을 빌려 2006년 서비스를 시작한 가상이동망사업자(MVNO)인 힐리오는 재미 한인 교포를 중심으로 내년까지 300만 명 가입자를 유치할 계획이었다. 한글을 쓸 수 있다는 장점과 음악·싸이월드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내세웠다. 하지만 현재 가입자는 18만 명 선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에만 3200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누적 적자가 5000억원을 넘는다. 올 1분기에도 273억원의 손실을 냈다.

힐리오의 실패는 미국 시장의 흐름을 타지 못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통신사업자 간의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워가는 추세에서 버티기 어려웠던 것이다. 미국 2위 사업자인 버라이즌은 올 들어 가입자 1320만 명의 5위 사업자 올텔과 합쳤다. 올텔 가입자를 더하면 8000만 명으로 1위 AT&T(7140만 명)를 능가한다. 버라이즌은 연내 올텔과의 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합병을 완료한 후 AT&T와의 선두 경쟁에 뛰어들 태세다.

독일계 4위 업체인 T-모바일도 M&A 대전에 뛰어들었다. 도이체텔레콤의 미국 내 이동통신 자회사로, 3위권인 스프린트넥스텔과 물밑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에서는 “미국의 이동통신 보급률이 80%를 넘어서면서 틈새 시장을 파고드는 가상이동망사업자(MVNO)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AT&T를 비롯한 빅3가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스포츠 콘텐트를 내세운 모바일ESPN이 문을 닫았다. 앰프드모바일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파산했다.

또 디즈니와 버진모바일도 가입자 평균매출이 급감했다. 선두업체들이 99달러 무제한 요금제를 도입하면서 MVNO의 가격경쟁력도 흔들렸다. 이통사들이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큰 이유는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가입자가 많으면 매출만 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서비스 도입, 시스템 구축, 휴대전화 단말기 구입 등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힐리오와 버진모바일의 합병 후에도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버진모바일은 미국 내 1위 MVNO 사업자지만 지난해 말 현재 가입자 509만 명에 불과하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망 임대비용을 아끼는 등의 장점이 있지만 합병 때 수익개선 효과를 확신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 MVNO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힐리오는 후불제, 버진모바일은 선불 가입자를 중심으로 가입자와 요금제 등의 차이가 커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최태원 SK 회장이 이달 초 지주회사인 SK㈜ 이사회를 뉴욕에서 열 만큼 그룹 차원에서 미국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인다. 이통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힐리오 간판을 내리더라도 합병 회사에 적극 투자해 시장을 키우겠다”고 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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