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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작업 잠수부가 국보급 청자 ‘슬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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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10월 한 잠수부가 빼돌렸다 24일 공개된 ‘청자사자향로’ 뚜껑 부분. 높이 15㎝, 뚜껑 지름 12㎝로 12세기 전라도 강진에서 제작됐다. 먼저 발견된 ‘청자사자향로(국보 제60호·목포해양유물전시관)’의 뚜껑과 똑같은 모양으로 원래는 세 개의 발로 떠받친 향로와 한 세트를 이룬다. [사진=김태성 기자]

지난해 10월 초 충남 태안군 대섬 앞바다. 수중에서는 ‘보물선’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12세기 중엽 고려 왕실이 혼수용품으로 쓰려고 전남 강진에서 만든 도자기를 옮기던 중 침몰한 선박이었다. ‘보물선’은 그해 6월 한 어부의 통발에 ‘청자를 물고 있는 주꾸미’가 걸리면서 실체를 드러냈다.

잠수부 최모(41)씨는 동료 한 명과 함께 수심 8~14m의 해저로 내려갔다. 조류가 센 곳이었지만 20년 베테랑 잠수부인 최씨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4년 군산 앞바다 십이동파도선 발굴 작업에도 참여했던 그였다.

도자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마련한 알루미늄 발판(가로 30㎝, 세로 1m50㎝)을 밟으며 이동하던 중 청자 하나가 최씨의 눈에 들어왔다. 높이 15㎝, 지름 12㎝ 크기에 앉아 있는 동물의 형상. 얼마 전에 발견돼 화제가 된 ‘청자사자향로(국보 제60호·목포 해양유물전시관)’의 뚜껑 부분과 똑같은 모양의 청자였다.

함께 작업하던 동료는 바닷물이 탁한 데다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지 않았다. 최씨는 발굴 지점에서 20여m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청자를 뻘에 묻었다. 그 위엔 알루미늄 발판을 얹어 위치를 표시했다.

7월에 시작한 발굴 작업은 4개월 만에 끝났다. 보름 뒤 최씨는 안흥항에서 50만원을 주고 모터보트를 빌렸다. 발굴 현장을 지키는 초소가 있었지만 해양경찰 한 명과 주민 한 명뿐이었다. 현장은 해안에서 7~8㎞ 떨어져 있어 초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최씨는 숨겨 놓은 21점의 고려청자를 한 시간 만에 전부 꺼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고려시대 침몰한 ‘보물선’ 발굴 작업 중에 발견한 유물을 빼돌려 판매하려 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최씨를 구속했다. 유물 운반과 판매 알선 역할을 한 윤모(39)씨 등 5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잠수부 최씨는 5분 일찍 바다에 들어가거나 동료가 멀리 떨어져 있는 사이 사자향로, 음각앵무문 대접, 연화당초 압출 양각화형 대접 등 최상급 유물만을 골라 숨겼다. 최씨는 운반 중에 깨져 버린 두 점을 제외한 나머지 19점을 10억원을 받고 팔려다 경찰의 잠복수사 끝에 검거됐다. 경찰은 국정원 국제범죄정보팀으로부터 국보 제123호 금제금강경판과 고려청자가 해외로 판매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거래자로 가장해 탐문수사를 벌여 왔다.

경찰은 문화재청과 해양경찰이 감시하고 있는 데다 모터보트를 타고 혼자 유물을 꺼내오기 어렵다는 점에 비춰 공공기관 등에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글=박유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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