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담당들 "살 떨려 못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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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 붙이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7일 제주를 방문해 주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朴대표는 손이 아픈 듯 파스를 붙였다. [제주=안성식 기자]

휠체어 타고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7일 전북 김제시에서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김홍일 의원이 함께했다. [김태성 기자]

지하철에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7일 오전 서울 지하철 안에서 출근길 시민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한나라당 홍사덕(경기 일산갑) 후보는 요즘 수천만원의 목돈이 드는 유세용 멀티비전 차량 임대를 포기했다. '선거비용 제한액'(지역구 평균 1억7000여만원)을 넘기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새 선거법에 의하면 선거비용 제한액의 0.5%(평균 85만원)를 초과하면 무조건 당선무효다.

열린우리당 이계안(서울 동작을) 후보의 경우 최근 주민이 박카스 한 상자를 들고 찾아왔으나 이마저 사절해야 했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가져오는 음료수라도 그냥 받으면 불법이다. 반드시 후원회를 통해야 하고, 모두 3개의 장부에 여섯번의 입.출금 내용을 기록한 뒤, 선거비용에 포함시켜야 한다.

◇"회계 책임자 못하겠다"=17대 총선은 돈 선거를 꽁꽁 묶어놓은 게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후보 못지않게 회계 책임자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회계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데다, 선거비용 제한액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제한액을 넘기면 후보도 당선무효되지만 회계 책임자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이들은 숫자를 맞추는 데 하루종일 매달리고 있다. "장부를 정리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라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무엇보다 선거운동제한액이 비현실적일 만큼 빡빡하다는 게 회계책임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홍보물.선거사무소 운영비 등 꼭 필요한 비용을 제하고 나면 쓸 수 있는 돈이 별로 없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지지자들이 사오는 박카스.사탕.떡 같은 것도 선거비용에 포함되는 것은 모두 되돌려보내고 있다고 이들은 전했다.

회계업무를 맡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까지 속출하고 있다. 서울 마포을에 출마한 모 후보는 두차례 지역선관위 교육에 참가했던 회계 책임자가 "살 떨려 못하겠다"며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한동안 선거운동이 마비됐다. 열린우리당 최재천(서울 성동갑) 후보는 회계책임자를 구하지 못해 고민하다 아예 선관위 직원 출신을 채용해 맡겼다.

◇들쑥날쑥한 유권해석=새 선거법이 '정치자금'계좌와 '선거자금'계좌를 분리해 놓은 것도 회계 책임자들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 서울 마포을 지구당의 회계 책임자 최인석(30)씨는 지난 2일 지출내역을 정리하다 정수기의 물을 '선거자금(비용)'과 '정치자금'중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 할지 고심하게 됐다.

선거사무소마다 수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며 하루에 대여섯통씩 생수를 마시는 게 보통이다. 崔씨는 곧바로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이에 대해 지역선관위에선 "물을 선거사무원이 마시면 정치자금, 자원봉사자 등이 마시면 선거비용"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정수기 설치비는 정치자금, 물값은 선거비용"이라고 해석했다. 중앙선관위와 지역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서로 달라 후보들을 혼동시키고 말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법규정이 모호해 전문가인 우리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고 실토했다.

◇"후보님, 집에 가서 드세요"=선거비용 지출 한도가 하도 빡빡해 후보에게 집에서 식사하라고 권하는 회계책임자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한 후보의 회계 책임자는 "비용을 절약하느라 후보에게 아예 '집에서 식사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선거운동원의 식단을 뭘로 하느냐도 회계담당자들의 고민이다. 선거법은 선거운동원의 경우 1인당 5000원으로 밥값 한도를 정해놓았다.

일선 회계책임자들은 "삼겹살만 먹어도 1인당 6000~7000원 아니냐"며 난감해 하고 있다.

이가영.정강현.김은하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ansesi@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tski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jongta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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