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서울을만들자>5.끝.숲.공원이 모자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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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93년 한국에 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핀란드인 미카(28)는 서울생활이 숨막힐듯 답답하기만하다.
도대체 마음놓고 쉴 수 있는 공원과 숲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생활을 처음 시작한 3년전 어릴 때부터의 습관인 아침운동을 하기 위해 숙소인 반포주변의 한강고수부지를 찾았다.그러나 단 한곳뿐인 진입로를 찾는데 무려 30분이나 걸렸다.그 흔한 안내간판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다음날 한국인 동 료에게푸념했더니 『목숨걸고 올림픽대로를 건너 들어가면 시간을 절약할수 있다』고 「편법」을 알려주더라며 어이없어했다.
그의 눈에 비친 고수부지의 풍경은 썰렁하기만 했다.농구대와 축구골대가 몇개 있었지만 기대했던 나무숲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덕수궁.경복궁등 고궁은 문화재관리 때문에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린이대공원등 공원조차 저녁시간에는 문을 닫아 직장인의 일과후휴식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기만 했다.
미카의 고향은 인구 16만의 핀란드 제2도시 투르크(TURKU)시.그는 그곳에서 매일 아침 조깅과 체조를 했다.장소는 현관만 나서면 손에 잡힐듯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근린공원.시내를 관통하는 아우라(AURA)강을 끼고 있는 이 공원 은 물이 맑아 언제나 강태공들이 붐비고 숲에는 새소리가 가득하다.한국에 2년반째 거주하고 있는 주한(駐韓)네덜란드 대사관 2등서기관 엠브레츠(33)가 들려준 체험담은 도시에서의 녹지공간이 얼마나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91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근무할 당시 새로 취임한 젊고의욕적인 시장이 도시를 완전히 바꾸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는 처음에 도시 이곳저곳에 꽃과 나무를 심더군요.뒤이어 공원을 푸르게 만들었습니다.몇년새 회색의 테헤란시가 녹색으 로 바뀌었습니다.그러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달라지더군요.전처럼 각박하지도 않았고 차량들도 난폭운전을 삼갔지요.여하튼 도시전체가 차분히 안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울 시민들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과밀하고 혼잡한 도시」(53.7%),「공해에 찌든 도시」(19.6%)가 바로 서울이다(94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서울의 이미지」 조사결과).이 조사결과가 아니라도 서울은 이미 오래전부터 「답답한 회색도시」라는 악평을 들어왔다.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어우러지는 숲.나무.물이 없기 때문이다.
외형상 서울은 「공원」에 둘러싸여 있다.서울시는 북한산 국립공원을 비롯해 수락산.불암산.용마산.청계산.우면산.대모산.관악산 등을 「공원」으로 분류,서울시민 1인당 공원면적은 9.62평방,외국 대도시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집근처에서 접할 수 있는 생활속의 녹지공간이지 차를 타고 1시간씩 가야 도착하는 등산코스가 아니다. 보라매공원.독립공원.양재시민의 숲.어린이대공원.서울대공원.창경궁.비원 등 「시민들과 함께 있는 공원」(근린공원)만 따지면 서울시 공원면적은 시민 1인당 1.6평방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서울시가 이런 공원을 모두 「담」으로 막아놓고 있는 것이다.남산을 빙 둘러가며 고층건물로 가리더니 이제는 「펜스」까지 쳐놨다.
어린이대공원도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들어가봐야 아스팔트길만 걷게 돼있다.관리만 생각하고 시민들의 감성은 생각지도 않은것이다.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런던의 「하이드 파크」가 콘크리트담으로 막혀있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 는가.
서울은 이제 더 이상 「물좋은」 곳도 아니다.
청계천을 비롯해 정릉천.홍제천 등 서울의 35개 하천중 23개를 서울시가 복개한 것이다.복개해서는 주차장.도로로 쓰거나 그냥 방치하고 있다.
이제 시민을 자연속에서 살도록 해주는 획기적인 정책의 전환이있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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