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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홀릭(WALKHOLIC)릴레이 인터뷰 (7) - 걷기동호회 ‘유유자적’ 김희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잠시 쉬어가는 자리, 거기가 걷기의 출발점이죠!”

Walkholic(이하 WH) 현재 활동하는 걷기동호회 ‘유유자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걷기중독자라고 하시던데, 어떤 분이신지 궁금한데요?

김희곤(38, 이하 김) - IT계통 회사에서 기술영업을 하고 있는 김희곤이라고 합니다. 좀 딱딱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유명한 청송군이에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그곳에 서 열한 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막내로 태어났어요. 현재는 길과 바람난 남편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아내와 얼마 전에 태어난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가 길과 연애에 빠진 것은 지난 2002년, 12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고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그전에도 등산과 여행을 좋아하긴 했지만 일에만 파묻혀 지내는 편이었죠. 그러다가 2003년 어느 날 불현듯 특별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행 관련 동호회를 알아보다가 걷기가 주제인 특이한 카페가 눈에 들어와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걷기의 마력에 빠져들었답니다.

WH 일상생활에서도 걷기를 즐겨하시나요?

- 저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버스, 승용차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출퇴근은 물론이고 주말여행도 주로 승용차를 이용하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걸어 다닐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의 걷기 실천은 출퇴근 길 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두루 걸쳐 있어요.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에스컬레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고, 버스 두세 정거장 정도는 기본으로 생각하고 걷는 편이죠. 주말에는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주말걷기나 정기걷기 행사에 참가하고, 참가하지 못할 때는 집 근처 올림픽공원 둘레를 조깅하거나, 성내천, 한강변에 산책하러 나갑니다. 걷기를 즐기다 보면 생활의 활력소를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일에만 너무 오래 몰두하다 보면 금세 지치고 매너리즘에 빠지잖아요. 그럴 때는 평소에 하는 일과 완전히 다른 일을 함으로써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요법이 현대인에겐 묘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춤이나 악기를 취미로 배우기도 하잖아요. 저한테는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머리가 복잡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걷기가 최고입니다. 정 시간이 없을 땐 동네 한 바퀴라도 돌고 오면 새로운 기운이 생기거든요.

WH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 시간이나 거리를 측정해 본 적 있으세요?

- 회사가 한강과 가까운 마포역 근처라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강변을 한 시간 정도 걷고 들어옵니다. 마포대교에서 원효대교까지 또는 마포대교에서 서강대교까지 갔다 오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립니다. 걷기가 끝난 후에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지요. 매일 만보계를 차고 다니는데요.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적게는, 10,000보에서 많게는 15,000보 정도가 나오더군요. 제 보폭이 82cm 정도이니 하루에 8~13km를 걷는 셈이네요. 직장인 치고 이 정도면 괜찮은 점수 아닙니까? (웃음)

WH 요즘 한강을 나가 보면 많은 분들이 걷기를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제 막 걷기를 시작하려는 분들한테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등산처럼(생략) 걷기에도 이런저런 장비들이 많이 필요한가요?

- 10km 안팎의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걸을 때는 고요한 마음 하나면 다른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양복을 입었든 구두를 신었든 걷는 것 자체를 즐기는 마음만 있으면 되죠. 하지만 20km가 넘는 장거리를 걸을 때는 간단한 준비물을 챙기시고요. 잘 마르고, 가볍고, 통풍이 잘 되는 소재로 만든 옷과 양말, 신발을 준비하면 유용합니다. 저는 조금 비싼 편이지만, 통풍이 잘되고, 발의 뒤틀림을 잡아주는 산악마라톤화를 주로 이용하고 있어요. 출퇴근길이든 주말 동호회 행사 참가든 일단 걷기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세요. 왜 그렇게 걷기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식상한 말 같지만 정말이지 몸과 마음이 절로 건강해지거든요. 제 경우엔 몸보다는 마음이 먼저 건강해지더군요. 사실, 걷기에는 좋은 장비나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답니다. 바로 길동무죠. 길 위에서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천릿길도 힘들지 않고 즐겁게 갈 수가 있겠지요. 직장 동료나 선후배도 좋고 자신을 또 다른 친구로 삼아 명상걷기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길에서는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나지만, 정확한 나이도, 직업도 모른 채 그저 함께 걸을 뿐입니다. 마냥 아름다울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사실은 제 아내도 걷기동호회에서 만났답니다. (웃음)

WH 걷기 실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 걷기를 실천하기란 의외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저 단순히 게을러서 하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택시, 버스, 지하철 같은 빠른 교통수단이 있는데, 어떤 바보가 세월아 네월아 하며 길 위에 시간을 뿌리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합리적이죠.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왜 걸어야 하는지 그 답부터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답이 명확하다면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답니다. 웬만큼 독하게 마음먹지 않고는 편안함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땀 흘리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잠깐의 편안함이 주는 유혹을 물리치면 몸과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고민의 방법을 바꿔보세요. 차를 탈지 말지를 고민하지 말고 얼마나 걸을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는 겁니다. 또 하나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요즘 걷기를 즐기는 분들이 많이 늘었지만, 많은 분들이 놓치는 것이 지나온 길의 뒷모습입니다. 앞만 보고 걷지 마시고, 가끔씩은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한걸음씩 지나온 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WH 앞으로 걷기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 현재는 ‘유유자적’이라는 걷기동호회의 일원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참여하고 활동할 생각입니다. 올해 목표는 작년에 18시간 5분에 그친 한강 100km 걷기대회 기록을 17시간대로 끌어올리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해안선을 따라 ‘ㄷ’자로 전국을 일주하는 것입니다. 현재 서울에서 무안까지 내려가 있는 상태입니다. 소망이라면 죽기 전에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걸어 보는 것이랍니다. 머지않아 가능하겠죠? (웃음) 참고로, 조금은 특이한 제 걷기경력을 추가한다면, ‘한강 100km 걷기대회’와 주말 이어걷기 방식인 ‘한반도 횡단 이어 걷기(강화도~경포대)’를 처음으로 기획하고, 진행했답니다. 지금까지 ‘한강100km 걷기대회’에 6번 참가, 모두 완보했습니다.

WH 마지막 질문입니다. 걷기란 과연 무엇일까요, 한 번 정의해보시겠어요?

- 걷기는 소통입니다. 자연과 소통, 길동무와 소통,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 자신과 소통. 이 모든 것과 소통하는 데에 걷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버스나 승용차처럼 빠르지도 않고, 달리기나 등산처럼 힘들지도 않으면서, 원초적인 모습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자신과 대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 걷기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바쁘게 살아가면서 놓쳤던 풍경과 길가에서 볼 수 있는 느린 삶들을 보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답니다. 길이 끝이 없듯이 걷기는 언제나 시작입니다. 걷다가 힘들어 주저앉으면 그곳이 또 다른 출발이고 시작이니까요.

객원기자 장치선 charity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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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walkhol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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