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님스 아일랜드’서 괴짜 작가역 맡은 조디 포스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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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공포증이 있어 집 안에만 꼭꼭 숨어살던 알렉산드라(조디 포스터·右). 그는 어린 소녀 님(애비게일 브레슬린)의 간절한 요청을 받고 님이 사는 머나먼섬으로 모험을 시작한다. [유니코리아 제공]

베스트셀러 작가 알렉스 로버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모험소설 시리즈로 유명하다. 소설 속 알렉스는 세계 곳곳을 누비는 용감무쌍한 남자다. 그러나 작가 알렉스는 실은 광장공포증 탓에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여성 알렉산드라다. 연락을 주고 받는 상대는 책을 내는 출판사 정도. 주로 인터넷과 전화 자동응답기를 통해서다. 사람 많은 곳만 무서워하는 게 아니다. 책상에 기어다니는 거미를 포함해 거의 모든 것에 질겁한다. 결벽 증세도 있어 걸핏하면 세정액으로 손을 씻어댄다.

분명 정상은 아닌 듯한데,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마는 이 괴짜 작가를 조디 포스터(46)가 연기했다. 7월 17일 개봉하는 판타지 어드벤처 ‘님스 아일랜드’(감독 제니퍼 플랙켓)에서다. 알렉산드라는 외딴 섬에 사는 소녀 님(애비게일 브레슬린)과 우연히 e-메일을 주고받게 되면서 생애 최초이자 최고의 모험에 뛰어들게 된다. 님의 유일한 보호자인 아버지 잭(제라드 버틀러)이 잠깐 집을 비운 새 폭풍우가 치면서, 낯선 사람들이 섬에 침입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족 관객을 겨냥한 모험 영화와 조디 포스터, 코믹한 느낌의 괴짜 작가와 조디 포스터라는 조합은 어딘지 낯설어 보인다. 예일대 우등 졸업이라는 간판과, ‘양들의 침묵’ ‘패닉 룸’ 등의 스릴러에서 쌓아 올린 강인한 이미지 탓일 것이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최근 프랑스 파리의 브리스톨 호텔에서 유럽 기자들과 함께 그를 만났다. 불과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이 배우와 얘기를 나눈 건 2002년 ‘패닉 룸’ 이후 두 번째. 6년 동안 눈가의 주름은 살짝 늘었지만, 인터뷰라는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프로다운 면모는 별로 변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의외의 조합’에 대해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운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님스 아일랜드’는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미혼인 그는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은 찰스(10)와 킷(7) 두 아들을 뒀다). 촬영장에서 여러 동물을 만져볼 수 있게 해줬고, 시사회에도 데려갔거든요. 첫째는 사람들이 북적대니까 조금 당황했고, 둘째는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더군요. 둘 다 엄마가 뭘 해서 돈 버는지도 알게 됐답니다.” (웃음)

그는 “이 작품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검토 중일 때 큰아들 찰스가 학교에서 여름방학 필독서 목록을 받아왔다. “거기에 웬디 오어의 『님스 아일랜드』가 있는 거예요.” 자신이 출연할 영화의 원작을 아들이 읽는다는 생각에 흥분한 엄마는 주저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님은 자연 속에서 사는 아이다. 바다표범·갈매기가 좋은 벗이다. 나무 오르기를 즐기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할 때는 밧줄을 탄다. 해양생물학자인 아버지 덕분에 과학 지식도 풍부하다. 엄마 없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조숙하고 의젓하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이나 레이저빔 나오는 로봇을 자신들의 영웅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자기 손을 이용해 자기 힘으로 고난을 헤쳐나가는 데는 서투르지요. 님은 달라요. 님은 적극적이고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아이거든요. 위기에 처했을 때 내면에 잠자고 있던 자신만의 영웅을 끌어내지요.”

반면 알렉산드라는 님과 달리 세상에 대해 수동적이고 방어적이다. 배달된 물건을 가지러 현관문 밖에 발걸음을 떼어놓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그런 그가 지도상에 나와 있지도 않은 머나먼 님의 섬까지 찾아간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커다란 고래와 헤엄치고, 정글에서 헤매고, 헬리콥터를 타기도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용기를 짜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모성애겠지요. 아이가 부모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이잖아요. 게다가 님은 알렉산드라의 부탁으로 화산을 조사하러 갔다가 부상까지 입었으니깐요. 아이 가진 부모라면 아마 님과 알렉산드라가 마침내 상봉하는 대목에서 마음이 뭉클할 거예요.” 정글과 바다를 오가는 거친 액션이 적지 않았지만, 평소 킥복싱·가라테·요가·에어로빅으로 다진 체력 덕분에 별 어려움은 없었단다.

그는 세 살 때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40년 넘게 배우 인생을 걷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이 관록의 배우에게 연기는 여전히 긴장을 요하는 일이다. “영화 찍는 건 대수술을 집도하는 것 같아요. 끝나고 나면 크나큰 안도감이 느껴지지요.” (웃음) 

파리=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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