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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DMZ, 생명의 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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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병관씨가 작업실에서 분신인 니콘 수동 필름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녹슨 실탄과 꽈리. ‘비무장지대(DMZ) 사진작가’로 불리는 최병관(58)씨가 작업실 한 편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두 가지다. 비무장지대에서 사진 작업을 할 때 가져온 기념품이다.

그가 직접 목격한 비무장지대는 녹슬어가는 실탄과 철모 곁에 들꽃이 흐드러지고 꽈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는 1997년 국방부 의뢰를 받고 2년간 비무장지대 사진을 찍었다. 민간인으로는 최초였다. 고향 인천 소래포구 근처 작업실을 찾는 손님에게 그는 으레 실탄과 꽈리를 보여주며 “비무장지대는 생명의 환희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처음엔 남북의 대결이라는 주제에 집중했는데, 다닐수록 그건 아니다 싶었어요. 여기에서 잡아내야 할 주제는 생명과 평화란 생각이 들더군요. 전쟁이 남긴 비극의 땅을 생명의 이미지로 바꾸고 싶었어요.”

최근 이라크 아르빌에서 자이툰 부대를 촬영하고 돌아온 그는 막사 옆 척박한 땅을 비집고 피어난 접시꽃 한 송이를 찍은 작품을 가장 아낀다.

그런 그가 6·25의 의미도 되새기고 새로운 작품 세계도 소개할 겸 ‘생명, 환희 그리고 DMZ’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고 있다. 경기도 양평의 ‘갤러리 와’에서 다음달 19일까지 계속된다.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관람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비무장지대 관련 전시로 대통령 표창도 받고 외교부장관상도 받았고, 특히 일본과 해외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제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외국 관람객을 볼 때마다 소통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이번 전시도 그런 소통의 장이 됐으면 합니다.”

그는 손때 묻은 카메라를 들고 ‘155마일 휴전선’을 3번 횡단했다. ‘결정적 순간’을 잡기 위해 되도록 걸어다녔다. 몸이 편하면 사진이 훌륭하지 않다는 게 그의 원칙이기도 하다.

“유서까지 쓰고 들어갔어요. 워낙 낭떠러지도 많고 지뢰투성이인 곳이니 그 정도는 각오해야겠더군요. 그때 몸을 험하게 굴려서인지 아직도 무릎과 허리가 성치 않아요.”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 “수색대 안내로 지뢰를 피해 길을 걷는데 저쪽에 아주 예쁜 분홍색 야생화가 보이는 거에요. 저도 모르게 방향을 틀고 카메라를 갖다 댔죠. 그런데 그만 발목 지뢰를 밟은 거에요. 수색대원이 다행히 침착하게 제거해줘서 무사했지만, 어찌나 식은 땀이 나던지…”

한번은 북한 쪽 초소에 근접했다가 그의 망원렌즈를 무기로 착각한 북한 군인에게 위협당한 적도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얻어낸 사진이 약 10만 점. 버린 필름은 수십만 장쯤 된다고 한다. 손때 묻은 니콘FM2 필름카메라만을 고수하고 촬영을 위한 연출은 절대 하지 않는 게 그의 원칙이다.

최병관씨가 비무장지대를 누비며 찍은 사진 중 아끼는 작품. 녹슨 철모 사이로 들꽃이 피어있다.

“촬영한 사진을 더 멋지게 보이려고 잘라내거나, 촬영할 때 후드를 써서 불필요한 빛을 차단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필터도 쓰지 않죠.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고 노력을 들이면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저절로 눈에 들어와요. 사진은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자연에 앉아 만들어내는 색과 이미지를 담아내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에는 비무장지대는 물론 길이나 바다 등 20여 년간 작업해온 예술사진들도 함께 선뵌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만 알려진 데서 탈피하고 싶어서다.

그는 서른두 살 때 사업을 그만두고 사진을 시작했다. 소래 염전 등 같이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걸 그만두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찾자고 생각했죠.”

낮에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었고, 작업은 주로 새벽과 저녁에 했다. 밤에는 암실에 틀어박혀 사진 기술을 독학으로 연마하고, 시도 썼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다”던 어머니도 그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주요 모델이었다. 어머니에 관한 사진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책도 내고 싶다는 꿈이 있다.

“지금 저의 전부는 카메라 한 대와 작업실 뿐이지만, 전혀 후회 없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하거든요.” 

글·사진=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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