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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총선땐 '휴대폰 투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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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오는 11월 실시되는 미국 대선에선 전체 선거구의 28% 정도가 전자 투표기를 도입하게 된다. 이들 선거구에서는 투표하자마자 집계가 가능하며, 개표 부정이나 오류가 없어질 전망이다. 이는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주에서 일어난 투개표 오류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15일은 우리나라 17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일. 줄을 서서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모습과 밤 새워 개표하는 풍경은 이번 선거 때에도 예외없이 볼 것이다. 일부 선거구에서 재검표 소송 역시 일어날 것이다.

정보통신 최강국인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전자투표를 도입할 수 없을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전자투표를 도입할 수 있는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으므로 정치적인 결정이 열쇠라고 말한다.

한국정보통신대학 공학부 김광조 교수는 "현금이 왔다 갔다 하는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수백만명인 시대"라며 "기술적인 불신보다 세대.지역 등의 문제까지 따지는 정당 간의 이해 관계만 조율되면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투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자투표는 은행 현금인출기 화면에 나타난 기능을 손가락으로 짚어 돈을 찾거나 보내는 것과 비슷한 과정으로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문제는 보안이다. 해커들이 침입해 1번 후보자에게 찍은 표를 2번에 찍은 것처럼 조작할 수도 있고, 투표 결과를 몽땅 지워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 암호학자와 컴퓨터 보안기술자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전자투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도입한 전자투표 시스템은 인터넷을 이용한 것이 아니다. 기존 종이 투표 방식을 단지 전자식으로 바꿔놓은 데 불과하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투표소에 나가야 되며, 정해진 투표기를 이용해 현금인출기를 조작하듯 해야 한다. 집에서 인터넷뱅킹을 하듯 전자투표를 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전산 담당자의 부정만 없으면 투개표의 오류는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투표 즉시 결과를 집계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미국과 같은 전자투표가 도입되기 위해선 컴맹도 손쉽게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돼야 한다. 또 자신의 투표가 개표에 그대로 반영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과제다.

미국 레베카 머큐리 박사가 개발한 보트미터시스템은 터치스크린으로 투표를 하면 그 결과가 바로 옆에 있는 프린터로 인쇄된다. 일종의 종이 확인증이다. 영화관에 들어갈 때 표 한쪽은 검표원이 갖고, 한쪽은 관람자에게 주는 것과 비슷하다. 투표자는 이 확인증을 우리나라의 투표함 같은 곳에 넣은 뒤 투표소를 나오게 된다. 만일 검표해야 할 일이 있으면 이 함을 열어 전자투표 결과와 맞춰 볼 수 있다.

미국 데이비드 차움 박사가 개발한 보트그리티 투표 시스템은 이런 필요 충분 조건을 잘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스템은 투표자가 찍은 결과가 저장된 바코드 형태의 줄무늬로 표시된 영수증 번호를 준다. 투표자는 이 번호를 입력하면 투표 결과가 개표로 그대로 이어졌는지, 아니면 중간에 변조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다면 그 이점은 엄청나다. 경희대 정보통신대학원 진용옥 교수는 "투표소에 가지 않고도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어떤 정보통신 단말기로도 투표할 수 있게 된다"며 "투표 문화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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