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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칼럼>법은 정의로운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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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적 지도자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상원의원 콜러는 한 레스토랑에서 중인 환시리에 자신의 친구를 권총으로 사살한다.사건 현장에는 시경국장이 몇 테이블 건너에서 식사중이었고 아래층에는 검사도 있었다.너무나 명백한 살인 사건이어서 콜러는 2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다.감옥 안에서 콜러는 바구니를 엮으며 마치 성자처럼 행복하게 생활한다.살인범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옥 밖으로 전달되면서 그는 살인자 아닌 성자로 부각된다.살인의 물증도 밝혀지지 않았다.이때 콜러 는 막대한 수임료를 지불하면서 신참 변호사 슈패트에게 무죄 변론을 의뢰한다.곧이어 콜러는 무죄 석방되고 죄없는 사격선수가 살인 누명을 쓰고 자살해버린다.변호인 슈패트 스스로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를 묻는 형식으로 시작되는게 독일 작가 뒤렌마트의 소설『법』이다.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정의로운 존재인가.같은 질문을 부장판사를 거쳐 변호사며 법학 교수인 강현중(姜玹中)교수가 『인권과 정의』라는 잡지에서 제기하고 있다.12.12사태때의 패장(敗將)과 광주항쟁 당시의 피해 자들이었던 시민들을 가해자로 몰아 내란죄및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했을 때 법원은 단한번도 영장을 기각한 적이 없었고 무죄를 선고한 적도 없었다.바로 그 법원이 이번엔 거꾸로 두 전직대통령을 같은 죄로 다루고 있으니 앞뒤가 맞 지 않는다는 강한 질책이다. 신군부세력 앞에 무릎 꿇고 피해자를 내란죄로 확정 판결까지 해놓고는 단한번 회개(悔改)와 반성도 없이 역사청산의 법정을 주재할 수 있느냐는 힐책이다.살아있는 권력 앞에선 침묵하고 몰락한「권력의 시체」에 대해선 엄중한 단죄를 한다고 할 때,그것이 과연 올바른 법의 심판인가를 묻고 있다.
필자 또한 같은 생각이고 비슷한 의견을 이 난을 통해 적은 바 있다.민주사회에서 법과 언론은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믿는다.여러 역할과 기능 중에서 법과 언론은 권력의 독주와 전횡을 막는 제도적 장치여야 한다.죽은 권력 아닌 살아있 는 권력에 대한 제동장치로서 법과 언론이 제 기능을 수행해야 법과 언론은정의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법과 언론은 언제나 산 권력 편에 서서 죽은 권력을 탄핵하고 소추하며 재판하지 않았던가. 시체에 대한 심판을 우리는 부관참시(剖棺斬屍)라고 했다.동양적 의미의 역사청산 방식이다.두가지 형태를 들 수 있다.전국시대 초(楚)나라 평왕에 쫓겨 망명길에 올랐던 오자서(伍子胥)는 적국의 장군이 되어 초를 굴복시킨뒤 이미 죽은 평왕의 시체를 꺼내 300번 매를 때려 복수한다.자신의 원한을 철저히 갚는 감정적 역사청산 방식이다.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부관참시당한 김종직(金宗直)의 경우는 정파적 역사청산의 희생물이다.연산군 집권에 따른 훈구파와 사림파간 대립 에서 사림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김종직을 청산의 빌미로 삼아 역사의 단죄를한 경우다.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수없이 거듭된 사화(士禍)나 정치적 변혁이 바로 이런 정파적 역사청산 방식의 결과였다는데 문제가 있다.
죽은 권력을 법의 심판에 올리는 것이 부관참시다.죽은 권력을난도질한다고 역사가 바로 설까.살아있는 권력에 바른 소리를 하고 바른 재판을 하는게 법과 언론이 해야 할 기본적 역할이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는 눈치보며 살다가,죽은 권력 이 되면 새 권력의 눈치를 보며 부관참시나 하는 법과 언론이 돼서는 안된다.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전대미문의 위업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 법과 언론은 두가지 약속을 해야 한다.하나는 살아있는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잘못된 자신의 과거를 진정한 회개와 반성의 자세로 청산해야 한다.자신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지 않고 누구의 역사를 바로 잡을 것인가.또 하나는 지금부터라도 죽은 권력 아닌 산 권력 앞에서 정의로운 언론과 법을 집행하는기관이 되겠다는 각오를 하는 일이다.
법과 언론이란 죽은 과거와의 대화가 아닌 살아있는 현재와의 대화를 중시한다.죽은 권력의 시체를 파헤치는 작업을 하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역할에 중심을 둬야 한다.이 기능을 제대로 한다면 역사는 언제나 바로 서 있게 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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