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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편 그 후 당 입김 세지고 ‘MB개혁’ 주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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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명박의 사람들’이 바뀌고 있다.

22일 한나라당 서울 여의도 당사는 오전 내내 북적댔다.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정몽준 최고위원이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 곧이어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이 기자실을 찾아 미국산 쇠고기 관련 추가협상 내용을 설명했다.

이에 앞선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2기 참모들과 만났다. 이 자리엔 정정길 신임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맹형규 정무, 정동기 민정,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이 함께했다. 이들 중 그나마 ‘창업 공신’이랄 수 있는 인사는 박희태 전 부의장과 이 대변인 정도다. 두 사람은 지난해 경선 당시부터 이 대통령을 도왔다.

나머지 인사는 경선 이후 또는 최근 합류한 사람들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경선 당시 이 대통령의 경쟁자였다. 맹형규·박재완 수석과 임태희 의장은 경선 때 중립을 표방했다.

반면 이 대통령을 오랫동안 도운 측근 그룹은 한발 뒤로 물러섰다.

이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제정책연구원(GSI)을 이끈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과 정책 브레인인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이 청와대 개편 과정에서 퇴진했다. 이 대통령을 서울시장 시절부터 도왔던 이종찬 전 민정수석도 물러났다. 당쪽 친이 그룹도 힘을 못 쓰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정두언 의원의 충돌 이후 양측 모두 ‘자제 모드’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그래서 당분간 당의 발언권이 측근 그룹보다 더 세질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사실 청와대 개편 과정에서부터 이미 당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류 전 실장과 이종찬 전 민정수석을 두고 홍준표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퇴진을 요구했다. 곽승준 전 수석을 두곤 임태희 의장이 “청와대 내에서 민영화 스케줄을 내고 대운하를 추진하는 사람이 누군지 한 번 얼굴을 보고 싶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청와대 수석 중 유일하게 자리를 옮겨 잔류한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강재섭 대표의 사람으로 불린다. 당에선 “앞으로 여의도 정치가 더 목소리를 낼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당장 ‘이명박식 개혁’도 영향을 받을 것 같다.

곽 전 수석과 이주호 전 교육과학문화수석은 이명박식 개혁 상품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작은 정부 ^산업은행 민영화 등 공공부문 개혁 ^대입 자율화 ^영어 공교육 등 정책이 그들을 통해 입안됐다. 두 사람은 “임기 초반에 개혁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두 사람이 물러난 만큼 개혁 정책이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다. 특히 당이 두 사람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당이 정책 주도권을 잡으면 안정적인 운용은 가능하나 파격적 개혁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기적으로도 당의 우위가 계속될까.

이번 인선은 이 대통령의 100일간 통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선 필요한 인재가 얼마든 또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중앙대 장훈 교수는 “대통령의 허물을 막아 주는 충성심 높은 인사들과 집행 능력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다수의 참모진과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한두 사람 등 세 그룹이 조화를 이루는 인선을 해야 한다”며 “이번에 그런 인선을 했는지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고 평가했다. 한 원로 정치인은 “이번 인선은 위기 탈출용”이라며 “새로운 국정 어젠다를 제시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또 다른 인재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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