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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중견기업] ‘클린룸’ 가르쳐준 일본 꺽어 ‘클린히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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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성도이엔지의 서인수 사장은 반도체 클린룸 설비로 시작해 중국에 레저단지를 건설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반도체 클린룸 설비업체인 성도이엔지의 서인수(53) 사장. 그는 청정을 무기로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일궜다. “작은 분야일 수 있지만 어느 곳에서든지 일등을 하면 사업 기회는 자꾸 찾아오더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삼성엔지니어링 출신이다. 고 이병철 회장이 1982년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무렵 일본 연수를 다녀왔는데, 그 뒤 ‘일본통’으로 인정받아 회사를 삼성전자로 옮겼다. 엔지니어로서 반도체 클린룸 설비를 담당했다. 그는 일본 반도체 기술자와 종합상사 직원들을 매일 만나 클린룸 업무를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일본 기업들에 바가지 쓰는 일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기술 없는 나라의 설움을 톡톡히 당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일본 상사원들은 만날 때마다 “우리가 밑지고 판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서 사장은 “밑지면 안 팔면 그만인데 왜 파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들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보여주며, 일본에서 파는 것보다 30% 싸게 파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이 비싸다고 일본 제품을 안 사면 미국 것을 살 것 아니냐. 그럴 바에는 우리가 좀 손해를 보는 게 낫다. 우리가 수출을 계속하면 우리 회사에 납품하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먹고살 수 있게 된다.” 당시 일본 상사원의 이 말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수출을 해야 하는 목적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87년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수출길부터 뚫었다. 보통 내수로 성장하는 중소기업과 달리 초기부터 해외 비즈니스에 역점을 뒀다. 그 결과 반도체 클린룸 설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클린룸 설비의 경우 단순히 먼지 없는 공간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장비·작업자 청정기술 분야에서도 세계 으뜸을 자랑한다. 한국의 반도체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주변 기술들도 덩달아 올라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3년간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환경기술(ET) 분야에도 진출했다. 동시에 플랜트·건설 쪽으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사업가로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국내 반도체 분야가 디스플레이, 태양광 발전으로 계속 진화하는 바람에 그의 사업영역도 확대됐기 때문이다. 태양광의 경우 발전의 핵심은 반도체 기술이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그는 중국·동남아 등 30여 개 나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설비업체 특성상 정확한 시장점유율을 따지기는 힘들지만 세계에서 10%는 넘을 것이라고 한다.

요즘 그는 중국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베이징을 지금까지 50번 이상 드나들었다. 하지만 유명 관광지인 자금성(紫禁城)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정도로 일에만 전념했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인근의 대경시와는 반도체공장 건설을 계기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 지역 개발권까지 따냈다. 모두 7000억원을 투입해 487만㎡ 규모의 호텔·쇼핑센터·골프장 등을 건설 중이다. 그동안 축적한 플랜트·건설·환경·정보기술을 바탕으로 대규모 레저단지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가 최근 새롭게 눈여겨보는 곳은 중동이다. 고유가로 오일머니가 넘치는 이 지역에 사업기회가 널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글=김시래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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