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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盧 유일하게 잘한 건 총리에게 상당한 역할 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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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22일 발간된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한가지 뭔가 시도했다고 평가받는 부분이 총리에게 상당한 역할을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촛불집회와 관련, “광장에 나온 시민 중 상당수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이라며 “보수가 결집하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과거 대선의 두번 패배에 대해 “내가 큰 정당의 울타리에서 안주하고 자만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고 말했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강주안ㆍ이종찬 기자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20일 여의도 당사에서 만났다. 18대 총선에 당선돼 국회에 돌아온 그는 “내가 3선인데 실감이 잘 안 간다”며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도 하니까 골치가 아파요. 꼴찌 먹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농담으로 말을 시작했다.

닷새 전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한 이 총재는 “대통령이 총리를 뛰어넘어 각 부처를 일일이 챙기면 경쟁이 심해지고 문제가 생겼을 때 비판과 공격을 대통령이 직접 받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며 총리 역할론을 강조했다.

-19일 있었던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 기자회견을 어떻게 보셨나요.

“상당히 국민 마음에 호소하려고 애쓴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용에서는 저희가 주장했던 것에 못 미치죠.”

-쇠고기 문제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네. 저희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검역주권 포기에 관한 부분하고 30개월령 수입에 관한 부분, 두 가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그 내용을 수정ㆍ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미국 수출업자들의 자율에 근본적으로 맡기고 그걸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그런 형태인데 과연 그게 앞으로 계속 강제성이 있겠느냐 하는 것 때문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에 이어 내각의 인적 쇄신이 예정돼 있습니다.

“이번에 청와대 사람들은 바꾸면서도 내각에 대해서는 분명한 얘기가 없습니다. 국회 개원 후로 미룬다고 했는데 그러다 보면 소폭 내지는 중폭이 아닌가, 국민 마음이 가라앉으면 그 정도로 끝내려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이번에 정말 화끈하게 국민의 마음을 잡아야지 또 어중간하게 땜질하는 식으로 끝냈다는 인상을 주면 이미 이 정권은 신뢰성에서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그걸 회복할 길이 없을 겁니다.”

-대통령이 대운하 중단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점은 제가 참 대통령의 선언을 평가합니다. 사실 대통령의 상징적 공약 중 하나인데, 그러나 가장 실현돼서는 안 될 공약이었지요. 아마 포기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것이 대통령이 어제 이야기한 것에 대한 진정성을 많이 뒷받침해 주는 게 될 수 있겠죠.”

-총리의 역할이 논란입니다. 이 총재께선 김영삼 정부 때 총리로서 ‘권한 행사’를 주장하다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적도 있었는데요.

“총리는 헌법상 내각을 통할하는 자리입니다. 이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확정됐을 때 내각 통할에 가장 중요한 국무조정 권한을 총리로부터 대통령실로 가져가 버렸어요. 이건 위헌적일 수 있다고 내가 지적을 했습니다. 총리와 대통령 사이에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합니다. 총리에게 자원외교를 맡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승수 총리가 인사하러 왔을 때도 ‘자원외교가 총리의 역할이 아니지 않으냐’는 의견을 말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00일간을 보면 역시 총리가헌법상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이렇게 파국에 가까울 정도의 난국으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정부 땐 달랐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한 가지 그래도 뭔가 시도했다고 평가하는 부분이 바로 총리에게 상당한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이 대통령과 면담하신 이후에 ‘심대평 총리설’이 나왔습니다.

“이번 사태가 보수가 뭉치지 못해서 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번 쇠고기 파동은 거의 전 국민적인 감정의 폭발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한 가지 예로 시내 광장에 나왔던 많은 시민 중 상당수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동안 쌓인 정권에 대한 불평과 불만 같은 것들이 쇠고기를 계기로 터졌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아요. 이런 시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수습해야 하는데 그것은 보수가 결집하는 처방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이 시점에서 해법은 국민을 상대로 의견을 수렴하고 달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정부 개조, 즉 개각이 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총리는 보수세력의 결집이나 연대를 꾀하는 차원이 아니라 폭넓게 국민 전체를 상대로 마음을 어우를 수 있는 인선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촛불집회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나는 이번 촛불집회가 어떤 이념이 휘몰아치거나 과거의 촛불집회에 대한 추억이 동력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키우려 했던 세력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적어도 현장에 나온 시민들은 정말 좌절과 분노가 동기가 됐다고 보입니다. 왜 이 많은 사람이 이 시점에 분노하는가, 단순히 물가가 오르고 쇠고기 문제가 우리 자존심을 상하게 했기 때문일까요. 저는 지금까지 보수가 놓친 게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난 10년이 외환위기 때문에 혼쭐이 나서 세계화다 개방이다 하면서 막 달려온 시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양극화가 찾아오고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것들이 생겼지요. 경쟁에서 처진 사람들,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에 해당될 수 있어 겁을 내는 직장인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학생이나 학부모도 그렇습니다. 진보 쪽에서는 보수가 잘나가는 자, 돈ㆍ능력 있는 사람만 편해진다고 공격하죠. 이번에 시민들 목소리 들으며 딱 느낀 게 이명박 정부는 성공 만능주의고 빠릿빠릿하게 뛰면서 빨리 뭘 이뤄내고 그 과정에 뭐가 잘못돼도 성공을 위해서는 무시할 수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지 않았나 하는 거지요. 약자ㆍ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지난 10년간 국민들을 좌절에 빠뜨린 무능한 진보의 어젠다가 아니라 바로 보수의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국회 개원이 안 되고 있습니다.

“국민께 대단히 송구스럽다는 생각입니다. 18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바로 의원 자격이 생겼는데 지금 국회를 못 열고 있지 않습니까. 책임은 물론 야당에 있습니다. 이제는 국회에서 쇠고기 문제를 비롯한 모든 국정 현안을 풀어내야 할 때입니다. 제가 한나라당에 있을 때도 장외 투쟁을 하면 나중에 등원할 때 명분을 찾느라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명분이 필요 없어요. 이 시점에서 국회에서 다루는 게 맞는다면 그게 등원의 이유가 되는 겁니다.”

-지난해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할 때 책상에 올라가는 파격적인 행동을 보고 다들 놀랐는데요.

“사실 나는 달라진 거 없거든요. 책상에 올라간 거 이야기하는데, 옛날 한나라당에 있을 때야 장소도 넓고 올라갈 필요도 없이 연설대도 장만돼 있고 그랬죠. 그런데 우리는 장소도 비좁고 책상이 딱 붙어 있어요. 서 있으면 내 키가 작아 보이지도 않으니 올라갈 수밖에 없더라고, 허허. 제가 달라졌다고 하면 선거 과정에서 국민을 접촉하면서 마음으로 느끼는 게 아주 달랐습니다.”

-지난 두 번 대선 때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던가요.

“물론이죠. 어떻게 보면 제가 굉장히 안주했어요. 큰 정당의 울타리 안에서 많은 군세에 둘러싸여 안주하고 때로 자만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한나라당을 보면 아직도 남 같은 느낌이 안 들 것 같은데요.

“정말 그래요. 대선 동안에는 나한테 굉장히 험한 소리 많이 하더만. 총선 동안에도 아이고, 뭐 불구대천지원수처럼 막 대하더라고. 그렇지만 아련한 옛집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른 집이고 남의 집이지. 말로만 하는 덕담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교체된 보수 정권을 제대로 뒷받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00% 잘하면 우리가 비판할 게 없으니까 가끔가끔 잘못도 하면서.(웃음)”

-어떤 말이 제일 서운했습니까.

“나는 결점도 많은데 딱 한 가지 자랑할 수 있는 게 헐뜯거나 공격을 받으면 확 화를 내는데 빨리 잊어 버려요. 2002년 대선 때도 김대업이니 설훈 사건이니 얼마나 고약하게들 했어. 아우, 심해요. 생각해 봐요. 한인옥 20만불, 뭐라 그랬더라, ‘20만 불 내놔라’해서 플래카드를 전국 여당 당사에 달았다고요.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해대는데 진짜 화났지.”
-요즘 개헌 논의가 한창입니다.

“난 이게 정파적ㆍ정략적인 논쟁의 기회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가령 내각제를 만들어 국회의원ㆍ정치인들의 발언권도 커지고 수시로 정권이 바뀔 수 있어 합종연횡 잘하면 뜻하지 않게 정권도 잡을 수 있고 그런 과정에서 중진의원 발언권이 세지고. 그런 차원에서 내각제 하자고 하면 참 불건전한 것입니다. 대통령제가 책임성이 없다는 것도 실제로는 단임제 경우에도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재ㆍ보궐 선거를 통해 국민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심판을 내립니다. 그 좋은 예가 이번 6ㆍ4 재ㆍ보선 아닙니까.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이 바로 정권에 대한 심판이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개헌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국가를 대개조해야 합니다. 앞으로 50년 정도를 최소한으로 잡고 선진화를 위해 국가 틀을 바꾸자는 겁니다. 연방제 수준의 획기적 분권화를 해서 외교ㆍ국방 같은 국가 차원의 일을 중앙정부가 맡고 나머지 권한을 대폭 지방에 이양해서 전국을 5, 6개 권역으로 나눴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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