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그늘 벗어나야 직판 활성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7호 29면

일본엔 ‘사와카미 펀드’가 있다. 업계에서 이단아로 불리는 사와카미 아쓰토(澤上篤人) 사장이 뚝심으로 굴리는 펀드다. 농사짓듯 가치 있는 종목을 발굴하는 ‘농경투자법’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특징은 오로지 ‘직판’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수수료는 1% 수준으로 낮다. 여러 번 내한했던 사와카미 사장은 “투자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수수료 부담을 덜기 위해 직판을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꿈은 일본 샐러리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9년 400명에게서 돈을 받아 출발한 뒤 지금은 12만 명 고객(자산 2조4000억원)을 둔 번듯한 회사가 됐다. 설정 이후 수익률은 60%가량이다. 미국에서도 뱅가드나 피델리티 같은 유명 운용사들이 직접판매로 회사를 키웠다.

 한국에선 이런 회사가 없다. 그동안 직판을 둘러싼 규제는 많이 풀렸다. 2006년부터 운용자산의 20% 안에서 직판이 허용됐고, 올해 초엔 100%까지 가능해졌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운용사의 펀드 직판은 5조원가량으로 전체 판매액의 1.6%에 그쳤다. 그나마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것은 없고 기관 대상의 사모(私募) 펀드가 대부분이다.

 판매사의 눈치를 보는 탓이 크다. 자산운용협회 관계자는 “직판을 하면 은행이 운용사의 계좌를 개설해 줘야 한다”며 “지금까지 짭짤했던 판매 수수료를 고스란히 포기하고 운용사 판매만 대리해주게 되니 고개를 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전산 시스템 구축 같은 초기 투자비도 만만치 않아 웬만한 중소형사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고 한다. 계좌·전산·수익률 관리 등을 도맡고 생각보다 원가가 많이 드는데 ‘바가지 수수료’란 누명을 쓴다는 주장이다. 물론 선진국에서도 비싼 펀드가 많다. 전문가가 차근차근 상품을 설명해 주고 자산관리를 도와주는 펀드들이다. 국내에선 이런 서비스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특히 외환위기 전엔 환매가 들어올 때 판매사들이 먼저 자기 돈을 내주고 주가 변동 위험을 떠안았다. 위험의 대가로 높은 판매수수료도 용인됐다. 그러나 지금은 제도가 바뀌었는데도 수수료는 그대로다.

 강방천 회장이 생각하는 운용 수수료는 일단 해외펀드는 연 2.3%, 국내펀드는 1.8% 정도다. 운용 수수료만으로는 비싼 편이다(국내 평균은 0.7%). 그러나 판매수수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여타 펀드의 ‘운용+판매 수수료’를 합친 총 펀드비용(국내 2.5%, 해외 최고 3.5%)보다는 싸다. 강 회장은 “서비스로 승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금감원의 우성목 자산운용감독국 팀장은 “직판 활성화는 판매 채널이 다원화되면서 투자자 선택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