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달달하고 맵싸한 생강 냄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7호 13면

연극 ‘침향’
6월 2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7시, 일 오후 4시(월 쉼) 문의 02-760-4840

나무를 천년 동안 땅에 파묻으면 지독하게 좋은 향기가 나고 그 향기를 맡으면 세상이 환해진단다. 경북 김천의 침향제(沈香祭)는 반세기를 묵힌 음습한 한을 보물 같은 애정으로 변화시키는 타임캡슐 만들기다.

탱자나무 그늘 드린 시골집 앞마당과 뒷산의 양지바른 부모님 묘소, 신랑각시 뒹굴던 생강 밭과 저장 굴을 배경으로 봄이 화사하게 찾아든다. 오늘은 한국전쟁 때 가족을 두고 월북한 강수가 56년 만에 다시 고향 땅을 밟는 날이다.

가족들은 잔치 준비에 부산하고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요란하게 울리는데, 한쪽에선 강수의 죽창에 아버지를 잃었던 어릴 적 친구 택성이 소주에 취해 복수의 낫을 간다. 그렇다 해도 마을 분위기는 시종일관 따사롭다.

마침내 도착한 강수를 맞아 가족·친지 함께 성묘를 가는데, 아버지 없이 오십을 넘겨 장성한 아들과 중국에서 낳은 딸은 돈 얘기로 껄끄럽고 평생 수절한 아내는 머리에 고운 꽃 매단 치매 노인이 되어 돌아온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때 뒷산 성묘길 생강 굴 속에 반세기 동안 아내가 고이 숨겨둔 남편의 ‘일급’ 기밀 노트에서 맵싸한 생강 내가 진동하는데….
꿈이 빨개서 빨갱이가 됐던 강수가 과거에 지키지 못했던 약속과 저질렀던 잘못이 지금 모두 모인 이 자리를 잠시 얼룩지게 한다.

그는 담담히 친구에게, 아내에게, 아들에게 사죄한다. “미안하다, 이 한마디 하는 데 평생이 걸렸다.” 이 말이 해묵은 한을 삭인다.
오십여 년 이념과 갈등을 뒤로한 채 이제는 생의 마지막 자락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화해했다.

연극 ‘침향’은 젊은 열정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희곡 작가 김명화의 제1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 박정자·손숙·박웅·박인환·정동환 등 한국의 대표적 원로배우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함께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 이지하·성기윤 등 젊은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