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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북카페] 얼마 안남은 삶 … 꿈이 있어 행복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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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췌장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그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남기는 유산인 셈이다 . 사진은 맨 위 왼쪽부터 포시의 가족, 어린시절 엄마와 함께 한 포시,아들 딜런과 돌고래 수영을 즐기는 포시.

“내 아이들은 이제 아버지가 없어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못보겠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는 포시 교수는 아이들과 쉽게 잊혀지지 않을 추억만들기를 하고 있다. 그는 “그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내가 그들과 있는 것처럼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살림, 288쪽, 1만2000원

“내 몸은 지금 문제가 있다. 대체로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간에는 열 개의 종양이 있고 살 날은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세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아버지이며 이상형의 여자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

한 남자가 책의 서문에서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랜디 포시(47), 미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 교수다. 이 정도면 이미 눈치챈 독자들이 적잖을 것이다. 맞다. 지난해 9월 18일 이 대학에서 펼친 ‘마지막 강의’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가 이 책의 저자며 주인공이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학생과 동료교수 400여 명 앞에서 열린 그의 강연은 동영상으로 유튜브(Youtube.com)에 올려져 전세계에서 이미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봤다. 이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소개됐고, ABC방송에서도 투병기와 강의 내용이 특집 방영됐다. 미국에서 4월에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이 책은 그 강의의 기록이자 속편 또는 해설서인 셈이다.

서문의 첫 줄만 보면 암 투병기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오해’다. 강의에서도 그는 자신이 ‘이야기하지 않을 것들’을 분명히 밝혔다. 암, 어린 시절의 꿈과 가족을 제외한 것, 영성과 종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는 “절대 ‘삶’에 관한 것”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이 나를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만들까”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자신의 ‘삶’이란 것이 ‘꿈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것도 병원 대기실에서.

“갑자기 명료한 답이 떠올랐다. (…) 지금까지 내가 이룬 모든 것들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어린 시절 가졌던 꿈과 목표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었다. 46년간 지녀온 그 모든 특별한 꿈들이야말로 남과 다른 나만의 개성이 아니던가.”

그의 어릴 적 꿈을 보자. ‘무중력 상태에 있어보기/NFL(프로미식축구리그) 선수 되기/『세계백과사전』에 내가 쓴 항목 올리기/커크 선장되기/봉제 동물인형 따기/디즈니의 이매지니어 되기’였다. 깜찍하고 황당무계하기도 한 이 꿈들을 그는 거의 다 이뤘다. 이런 식이다. 우주비행사는 고사하고 “그저 둥둥 떠 있어보고” 싶었던 꿈은 교수가 된 뒤 학생들을 데리고 NASA(미항공우주국) 탑승 실험에 참가하는 것으로 이뤘다. 비록 NFL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아홉 살 때 “그 꿈을 성취하려고 노력했던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얼핏 들으면 자기 자랑 같지만, 속내는 자신의 삶의 여정에 함께 했던 이들과 그들이 자신에게 준 ‘선물’에 대한 찬사다. “그냥 웃어주는 것으로 아들의 창의력을 북돋아주었”던 아버지 덕택에 방 안의 벽에 페인트칠할 수 있었고, 어릴 적 엄격한 코치로부터 축구를 배우면서 팀워크, 인내심, 열심히 노력하는 것의 가치를 배운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더듬은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친 이야기나 암을 진단받은 후에 벌어진 일화도 그는 유쾌한 코미디처럼 들려준다. 지난해 8월 15일 의사에게 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확인하고 아내와 함께 울면서도 방 안에 티슈가 없다는 것을 보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장소에서, 이런 때에, 크리넥스 한 통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부인에 따르면 “가장 낙천적이고 활기찬” 그는,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속마음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나는 의사들에게 그들이 어떤 수술 무기를 들이댄다 해도 기꺼이 견딜 것이며 약품 선반의 어떤 약을 주더라도 다 삼켜버릴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재이(부인)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오래 살고 싶었다.”

그는 6세, 3세, 18개월짜리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마다 맘으로 작별인사를 보내는 가슴이 미어진다. “자주, 샤워 중에 울 때가 있다. (…) 아이들이 아버지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내가 잃을 것들보다 그들이 잃을 것들에 더 집착한다.” 십대 아이들의 아버지가 한번 돼보고 싶다는 그는 “그런 때가 왔을 때 재이를 도우며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유감”이고, “침대에 누워 옆으로 몸을 돌렸을 때 당신이 거기 없을 것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라는 아내의 말엔 할 말을 잃는다.

그래서 살 수 있는 시간이 ‘몇 달’밖에 안 되는 그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의 1분, 1초가 미치도록 소중하다. 수퍼마켓에서 계산을 잘못해 돈을 더 지불했는데도 돈을 돌려받는 데 걸릴 5분이 아까워 그냥 떠났단다. “시간이 당신이 가진 전부며,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끝없이 펼쳐진다.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해라, 사과는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작이다, 누군가 당신을 위해 한 일을 당신도 다른 이들을 위해 하라…. 자신이 꿈을 좇아 살면서 배우고 느낀 것을 조목조목 나열한 그는 강의 말미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사실 이 강의는 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책도 강의가 끝나는 대목에서 함께 끝난다. 동영상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부인의 말이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제발 죽지 말아요.”

책은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니스트 제프리 재슬로가 정리했다. 포시 교수가 남겨진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책 쓰는 시간을 따로 할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매일 자전거를 타는 포시를 좇으며 재슬로와 휴대전화 헤드셋으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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