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라야마 총리 전격 사임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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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빨라도 올 4월까지는 자민.사회.신당 사키가케 연립정권의 간판역을 할 것으로 예상되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총리가 5일 전격 사임의사를 표명한 것은 힘없는 연립 제2당 당수가 정권을 끌고나가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기 때문 으로 보인다. 존폐의 기로에 선 사회당의 무라야마 위원장이 총리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애초부터 그의 국정능력과는 무관했다.연정을통해서라도 여당으로 복귀해야겠다는 자민당의 정권욕심이 기형적인무라야마내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때문에 무라야 마 내각은 「물과 기름」관계였던 자민당과 사회당이 서로 공격을 자제하면서 오로지 정권의 연명만을 떠받쳐 존재했다.3당은 마찰을 피하기 위해 늘 정책적인 이견(異見)을 적당한 선에서 접어뒀다.그러나 이같은 모호한 태도는 일본 국민들의 눈에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권으로 비춰졌다.상대적으로 거품이 걷힌 후의 일본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오움교사건.효고(兵庫)현 남부지진으로 할 일은 산처럼 쌓여갔다.
정치.경제.사회의 전반적인 위기를 극복할만한 강력한 지도자를바라는 일본 국민들의 여망은 거세어 갔고 무라야마 자신이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당연하다는 여론이다.문제는 왜 서둘러 퇴임시기를 잡았느냐에 있다.당장 22일부터 열리는 정기국회를 앞두고 연립내각은 「책임있는 정부」의 이미지를 보여줘야 할막다른 골목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5일 입후보를 마감한 사회당위원장 후보에 아키바 다타토시(秋葉忠利)중의원의원이 무라야마위원장에게 도전한 것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다수당인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 체제로 정면돌파하지 않으면 오자와 이 치로(小澤一郎)를 전면에 내세운 신진당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을 3당이 한 것같다.
무라야마의 사임으로 차기총선체제가 조기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11일 임시국회를 열어 하시모토를 총리로 선출하고 나면 곧바로 「하시모토-오자와 전쟁」이 본격화되는 것으로 봐야한다.이는 두 사람의 정치성향상 일본 정치를 보수화의 물 결로 몰아갈공산이 짙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중의원해산과 총선시기는 아직 예단할 수 없으나 예산안 통과가예상되는 4월이후 그리 멀지않은 시기일 가능성이 크다.그러나 차기 총선 이후에도 일본 정치의 이합집산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현재로선 자민.신진당 모두 과반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또 다른 연립정권이 이어질 것이란 추측이 다수론이다.이념을 중심으로 「편 가르기」가 자연스럽게 됐던 냉전때와는 달리감투와 정책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정당들이 「헤쳐 모여」하는 과정이 앞으로 몇 년은 더 계 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출신인 하시모토의 등장으로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북한이 지난해부터 일본과의 창구를 자민당으로 바꾼 후 일본의 대북 쌀 원조협상 등 양국관계를 자민당이 주도해왔다.따라서 자민당의 부상에 따른 대북 접촉도 더욱가속화될 전망이다.
도쿄=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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