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행복지수 높이기] 9. 가족 해외 배낭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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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김현택씨 가족이 해외 배낭여행 때 찍은 사진들을 펼쳐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울산=송봉근 기자]

"가족이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것만큼 큰 재산이 있을까요."

두 아들 찬주(중1).찬우(초등4)와 함께 방학 때마다 배낭을 꾸리는 초등학교 부부교사 김현택(39.울산 울주군).양선미(38)씨는 "여행은 가족애를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고 말한다.

지난 겨울 김씨 가족은 꼬박 한달동안 터키.이집트.이스라엘.요르단을 여행했다. 사해에 들어가 직접 몸이 뜨는 것도 확인하고, 말을 타고 사막을 돌며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구경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온 가족이 함께 했다. 이집트 흑사막에서 주워온 꽃모양 돌은 찬우의 '보물 1호'가 됐다.

오싹한 사건도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렌터카를 주차해두고 이스라엘 가이샤라의 한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나와보니 도둑이 들어 차 유리창을 깨고 비상식량을 넣어둔 배낭을 훔쳐갔다. 경찰서가 있는 예루살렘까지 이동하는 네시간 동안 깨진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비를 차 발판을 꺼내 막았던 일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됐다.

"배고프고 춥고 힘들었을텐데도 아이들이 아무 불평 없더라고요.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에 똘똘 뭉치게 된 거죠." 어머니 양씨의 기억이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찬주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반배치고사를 치러야 했다. 찬주는 문제집을 들고 여행을 떠났다.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서 틈틈이 시험공부를 했다. 부모가 "조금 더 있다가 귀국하자"고 조르고 아이는 "시험공부를 사흘이라도 해야되지 않겠냐"며 말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찬주는 전교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을 올려 입학장학생이 됐다.

이것이 김씨 가족의 다섯번째 해외배낭여행이었다.

이들 가족에게 배낭여행 바람은 우연찮게 찾아왔다. 지난 1996년 양씨의 동료 교사가 급하게 연락을 해 왔다. 함께 여행가기로 해 놓은 가족이 펑크를 냈다며 이들을 청한 것이다. 보름동안 베트남.캄보디아 등을 여행하면서 이들 부부는 새 세상을 봤다.

"우리 자주 여행을 가보자"고 의기투합한 김씨 부부는 그 다음해 곧바로 홍콩.마카오 여행을 떠났다. 남들이 흔히 하듯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했다. 하지만 배낭여행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버스를 타고 사진을 찍고 하는 여행은 남는 게 없다"는 결론이었다. 특히 시시때때로 주어지는 쇼핑시간은 너무 아까웠다.

그 후 두 사람은 방학때마다 두 아이를 제주 외가에 맡기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일본.중국.호주.태국 등을 각각 20일 안팎의 일정으로 돌았다.

둘째 찬우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2002년 1월 드디어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배낭여행이 시작됐다. 20박21일 일정의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항공권 예약을 하던 날 아버지 김씨는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과연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에 병까지 난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시작하니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잘 견뎠다. 싼 항공권을 구하느라 일본 공항에서 하룻밤을 지샌 뒤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고, 프랑스 파리에서 내려 첫날부터 개선문-샹제리제 거리-노틀담 성당-퐁피두 센터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서 이동하는 강행군을 했지만 책에서만 봐온 명물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피곤도 잊었다.

첫 여행의 성공 뒤 김씨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해 여름에는 태국.라오스 등을 다녀왔고,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중국 등을 여행했다.

일년에 두번씩 이런 가족 이벤트를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도 있다. 맞벌이긴 하지만 한번에 800만~900만원씩 드는 여행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김씨 가족은 평소 늘 '긴축재정'이다.

13년을 꼬박 탄 첫 차 프라이드는 지난 2월 폐차시키고 150만원짜리 중고 마티즈로 바꿨다. 외식도 대부분 1000원짜리 김밥으로 때운다. 5000원짜리 설렁탕이면 호화메뉴. 아이들 사교육비도 태권도와 수영 강습비가 전부다. 가전제품이나 가구, 옷 등의 생활용품도 거의 바뀌지 않는다.

목표가 있는 절약이어서인지 아이들도 적극 협조한다. 거실 벽에 세계지도를 붙여두고 가족이 함께 "다음엔 어디로 가볼까"를 계획하는 것부터 큰 재미다.

지난 1월 김씨는 인터넷 카페 '가족배낭족(cafe.daum.net/backfamilys)'도 만들었다. 가족여행기를 체계적으로 기록해두고 또 가족배낭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김씨의 노하우를 전하기 위해서다.

"나무를 보세요. 가지가 일찍 갈라져 자란 나무보다 한줄기로 쭉 올라가다가 위에서 갈라지는 나무가 더 튼튼해 보이잖아요." 김씨는 가족여행의 효과를 나무에 비유한다.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에 최대한 가족이 공유한 추억과 사랑을 많이 쌓아야 든든한 삶의 기초가 될 것이란 믿음이다.

울산=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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