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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기지 이전비 왜 우리가 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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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 글은 평택 주민에 대한 보상과 기지 이전비용 충당을 위해 용산기지 일부를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는 취지의 남창희 교수의 글(3월 26일자)에 대한 반론이다.

우선 남교수의 용산기지 매각 주장은 미군의 이사를 위한 모든 비용을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한다는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대한 굴복을 당연시하는 것이라는 데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주지하듯이 용산 미군기지 이전은 미국의 군사적 필요와 요구가 우선적으로 고려된 결과로서 우리나라가 그 이전비용을 부담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21세기의 새로운 전쟁개념과 전략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해 전 세계 미군의 전략적인 재배치가 불가피하다"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연합뉴스, 2003년 11월 26일)이나 "용산 미군기지 이전은 전 세계 미군 재배치 전략의 일환으로 독일.일본, 기타 여러 국가에 배치된 미군도 논의 중"이라는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인터넷 기자들과의 공동기자회견, 2004년 2월 10일)은 이를 확인해준다.

더욱이 지금 추진 중인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은 미군의 대(對)중국 봉쇄 및 대북한 선제공격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이같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역행하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을 우리나라가 댄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그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고, 용산 땅을 굳이 매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한 남교수의 용산기지 매각 주장은 용산기지의 민족공원화를 통해 외국 군대의 주둔으로 짓밟혀 온 우리의 주권과 국민 자존심을 세우고자 하는 오랜 국민적 여망과도 배치된다. 만약 용산기지를 일부라도 매각한다면 민족공원화 계획은 크게 훼손될 것이고, 일부 개발업자들의 사욕을 채우는 투기장으로 변모함으로써 용산 미군기지 전면 반환의 역사적 의의는 크게 퇴색하고 말 것이다. 천문학적인 액수가 소요될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우리나라가 부담한다면 용산의 민족공원화는 요원한 꿈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한편 용산기지 이전에 따른 서울시민의 편익을 생각할 때 용산의 일부 매각에 의한 평택 주민 보상이 형평성에 맞다는 주장은 서울 시민이 용산 미군기지 반환으로 이익을 봤으니 미국에 그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로, 용산 미군기지로 인해 온갖 고통과 희생을 강요당해 온 서울 시민과 우리 국민의 처지보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또한 용산 미군기지 이전비용 전액의 한국 부담과 400만평의 대체부지 제공을 강요하는 미국의 요구를 기정사실화하고 용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 주민들의 희생과 고통을 당연시하는 주장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평택 주민에 대한 보상은 어디까지나 주한미군을 위한 것이지 평택 미군기지가 확장되면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나야 할 평택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457만평의 미군기지로 인해 극심한 소음, 수질과 농지 오염, 각종 미군범죄 등에 시달려 온 평택 주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현 평택 미군기지는 확장이 아니라 축소되어야 마땅하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은 기지 전면 반환이라는 오랜 국민 여망을 실현하면서도 그것이 우리 국민과 지역 주민에게 또 다른 피해나 부담을 가져오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산 미군기지를 축소.통폐합 방식으로 이전하면 된다. 미국도 1만2000~5000명의 주한미군 감축을 염두에 둔 주한미군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으므로 기존 미군기지로의 축소 통폐합 방식의 이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주한미군의 병력과 무기감축은 본격화되고 있는 남북 화해시대와도 부합한다.

유영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