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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한국 유학생활 두달째 맞은 사할린동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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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사할린동포 유학생들. 왼쪽부터 우미하일.강리나.이순희.정마리나.박알렉세이. [부산=송봉근 기자]

"사할린에서도 한류 열풍이 거세요. 위성 TV로 '대장금' 등 인기 드라마를 보고, 휴대전화나 가전제품도 한국 것을 제일로 치죠. 그처럼 동경하던 모국 땅을 직접 밟은 게 꿈만 같아요."

지난 2월 말 부산 동서대로 유학 온 사할린 동포 정마리나(22.디지털디자인학부1).이순희(24.영어과3).박알렉세이(25.인터넷공학부3).우미하일(20.국제관계학부1).강리나(24.일본어3)씨.

이들 다섯명은 동서대가 사할린 동포 4만3000여명의 2.3세들을 우수한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길러내기 위해 마련한 유학 프로그램의 첫 수혜자다.

지난해 9월 사할린 한인회 등에서 추천한 13명 중 면접을 거쳐 선발된 이들은 현재 대학 앞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자취 생활을 하고 있다. 머나먼 이국에서 살았어도 피는 못 속인다고 "사할린에서 밥과 김치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한국 음식에 적응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사할린과 한국은 다른 점도 무척 많다는 게 한국에서 한달을 지낸 이들의 소감이다.

"한국은 인터넷 속도만큼이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요. 차들도 너무 빨리 달려 거리에 나가기가 무섭더라고요."(정마리나), "한국은 디지털 나라란 생각이 들어요. 앞선 정보통신(IT) 기술과 시설에 눈이 휘둥그레졌죠."(박알렉세이)

오전 8시쯤 일어나 오후 4시면 퇴근하고, 토.일요일엔 모두 쉬는 사할린의 여유있는 삶에 익숙하던 이들에겐 모든 것이 '빨리 빨리' 돌아가는 한국 사회가 조금은 힘겹다고 한다.

판이한 날씨도 낯설긴 매한가지다.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사방이 눈에 덮여있고 기온도 영하 20도쯤은 보통인 사할린과는 달리 부산은 겨울에도 눈이 없고 날이 따뜻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처럼 낯선 환경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동포 유학생들이 사할린 경제를 주도했으면 한다"(장제국 동서대 국제협력위원장)는 대학 측의 바람대로 이들은 한국에서 야무진 꿈을 키워가고 있다.

"내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내놓겠다"(정마리나), "사할린 시청에서 근무하고 싶다"(박알렉세이), "한국의 IT 노하우를 배워 사할린 동포들에게 전해주고 싶다"(우미하일.강리나)….

이들의 등록금과 주거비는 대학에서, 월 30만원의 생활비는 재미.재일동포 후원자가 지원하고 있다. 대학 측은 올가을에도 5~7명의 사할린 동포 자녀를 선발해 내년에 입학시킬 예정이다.

부산=정용백 기자<chungyb@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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