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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문학에 안보문제 답을 묻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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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국방부가 안보 해법을 인문·사회과학에서 찾으려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이라크 불안, 이슬람 근본주의 등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를 대학의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 이름을 따 ‘미네르바(그리스 이름은 아테나) 컨소시엄’으로 불린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5년간 5000만 달러(약 5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하고 지난주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8일 보도했다. 국방부는 이달 말 미국과학재단(NSF)을 통해 지원하는 또 다른 민관 협력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소련이 1957년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최초로 발사해 충격을 받은 미 정부가 광범위한 민관 협력 연구를 후원한 이후 50여 년 만에 나온 것이다. 그동안에도 소규모로는 국방부의 인문·사회과학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돼 왔다. 연구 과제로는 중국의 공산당 독재가 완화됐을 때 인민해방군의 변화,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부활한 이유 등이 제시됐다. 집단이 비이성적인 결정을 하는 요인을 분석하는 컴퓨터 모델과 이라크에서 확보한 자료의 번역도 포함됐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소프트 파워는 군사력을 뛰어 넘는 국력의 핵심 요소”라며 “학계와 정부 간에 안보 문제에 대한 시각 차가 큰 만큼 좁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지난해 12월 상위 60개 대학을 대표하는 미국대학협회(AAU)에 미네르바 프로젝트의 운영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AAU는 연구 과제를 제안하면서 “연구가 비밀리에 진행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안을 중시하는 국방부의 일 처리 방식이 자칫 학문적 자유와 개방성을 침해하지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1만1000명의 회원을 둔 미국문화인류학회(AAA)는 국방부에 보낸 문서에서 “테러와 폭력의 기원을 연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국방부의 직접 지원은 이해관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학계 내부의 연구 성과 검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이츠는 이에 대해 “미네르바 컨소시엄은 학문적 자유와 정직성·개방성을 엄격히 지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미 정부의 인문·사회과학 연구 지원의 대표적 산물로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4년 6월 국무부의 요청으로 일본인의 사고와 행동을 분석한 결과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베네딕트는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문화인류학적으로 해부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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