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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축구 ‘겨울잠’ 깨운 히딩크에 기자들 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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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러시아 선수들이 두 번째 골을 터뜨린 안드레이 아르샤빈<右> 주위에 모여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스브루크 AP=연합뉴스]

승장 히딩크가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유럽 축구 기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쳤다.

박수에 인색한 기자들이 보기에도 이날 러시아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8강에 진출한 것은 좀처럼 믿기 힘든 기적이었다. 히딩크는 “우리는 축구를 했고, 여러분은 오늘 축구를 보았다. 나는 정말로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벌써 세 번째 ‘큰 성공’이다.

그는 2002년 한국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다. 2006년에는 호주를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린 데 이어 16강 고지까지 단숨에 끌어올렸다. 이어 러시아에서도 그는 다시 기적을 일궜다.

이번 대회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1-4로 대패한 뒤 히딩크는 “우리의 젊은 선수들은 3년간 배울 것을 3일 만에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예언대로 러시아는 2차전에서 그리스를 제압한 데 이어 스웨덴까지 농락하며 16강 관문을 통과했다.

그는 때로는 냉엄하게, 때로는 친근한 스킨십으로 선수들을 요리했다.

이날 중앙 수비수로 활약한 이그나셰비치는 러시아 대표팀 소집 때 지각했다가 집으로 쫓겨났다. “지각생은 필요없다”는 히딩크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백배사죄하고 히딩크 앞에 백기투항했다.

기량은 좋지만 정신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는 러시아 언론의 예상을 깨고 대표팀 명단에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히딩크는 한국 감독으로 있을 때도 김병지·홍명보를 한때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등 고단수의 심리전으로 선수들을 장악했고, 이는 팀워크 강화와 정신력 재무장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그는 유머와 멋을 아는 지도자로 불린다. 일부러 장난을 걸고, 스스럼없이 선수들과 스킨십을 한다. 장난 삼아 머리를 툭툭 건드리고 옆에 가서 몸싸움을 걸며 선수들과 몸으로 먼저 친해진다. 머나먼 이국에서 번번이 성공을 거두는 그만의 장점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선수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데 있어서 히딩크를 따를 감독은 별로 없다. 한국 대표팀을 향해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외쳤던 것처럼 히딩크는 스웨덴전 승리 후 “선수들이 정말 잘해 주었다”고 한껏 치켜세웠다. 이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매번 비슷한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오늘같이만 하면 이길 수 있다”며 네덜란드와의 8강전을 겨냥했다.

인스브루크(오스트리아)=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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