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한 표의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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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가라앉느냐 헤엄치느냐,사느냐 죽느냐,생존하느냐 멸망하느냐.
나는 항상 투표하는 손길과 마음에 내 운명을 맡긴다.』 19세기 중엽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대니얼 웨브스터가 애덤스와 제퍼슨대통령을 추모하면서 한 말이다.이 말은 민주주의 사 회에 있어 선거 혹은 투표의 중요성을 가장 실감있게 나타낸 말로 자주인용되고 있다.
우리 헌법 제77조도 명시하고 있듯 민주국가에 있어서의 선거는 「보통.평등.직접.비밀」등 네가지 원칙에 의해 치르도록 돼있다.하지만 웨브스터가 앞의 말을 하던 무렵까지만 해도 그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대표적인 것이 불평등선거제 도였다.
20세기초까지 존속했던 불평등선거제도는 복수투표제와 등급투표제로 구분된다.복수투표제는 일반 선거인이 한 표의 투표권을 갖는데 비해 재산상태.교육정도 등 특별한 요건을 갖춘 선거인에겐2~3표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제도.등급투표제는 신분.재산.납세등에 따라 선거인의 등급을 매기고 각급 선거인수와 의원수의 비율을 차등있게 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선거에 있어서 「불평등」의 개념은 현대 민주사회에서도존재한다.급속한 산업화 추세와 도시화에 따른 인구집중, 그리고투표결과의 정치적 효과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가령 도농간(都農間)당선자들이 득표수에선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데도 투표권의 가치나 정치적 효용은 같다는 것이 「평등」의 개념에서 벗어나지않느냐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75년 대법원은 당선자 사이의 득표 차이가 5배이상인 경우 인구과밀지역의 선거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린 일이있다.그때까지만 해도 의원의 입장에서는 득표수가 많을수록 자랑이었지만 유권자의 입장에선 도시 유권자가 농촌 유권자보다 낮은정치적 효과를 갖는다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따지고 보면 모두가 똑같은 한 표인데도 25만표를 얻은 의원과 5만표를 얻은의원이 똑같은 기능을 갖는다면 25만표를 행사한 유권자의 참정권은 5만표를 행사한 유권자의 참정권에 비해 5분의1로 평가절하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우리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것은 당연하지만 그 조정이 다시금 당리당략에 좌우된다면 「평등의 원칙」은 묘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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