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쇠고기 문제 얘기하던 사람들 느닷없이 공영방송 사수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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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60·사진)씨가 또다시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논란은 17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하면서 불거졌다. 이날 방송에서 그는 최근 며칠 사이 열린 촛불집회에 대한 불편한 속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놨다. ‘촛불장난’ ‘난동’이란 표현도 나왔다. ‘반(反)촛불 의병(義兵)’의 필요성까지 거론했다.

“쇠고기 (얘기)하던 사람들이 ‘공영방송 사수’라고 하면서 무슨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쇠고기 문제는 하나의 구실이었다.…그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더라도 쇠고기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짐작을 했다.…불장난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데게 된다. 너무 촛불장난도 오래 하는 것 같다.…일부 네티즌들의 조·중·동 광고 탄압은 범죄행위이고 집단난동이다” 등이 그가 평화방송에서 한 말이다. <관계기사 5면>

불과 6일 전만 해도 이토록 비판적이지는 않았다. 11일 그의 책 『초한지』(楚漢志·전 10권) 완간 기자간담회에서 촛불집회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위대하면서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답했었다. “결코 빈정대는 말이 아니다. 그것을 민의라고 말할 때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며 조심스럽게 촛불집회의 정당성도 함께 인정했던 그다.

지난 엿새 사이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그에게 전화를 걸어 논란의 배경을 들어봤다.

-촛불집회를 보는 시각이 왜 바뀌었나.

“11일 기자간담회 때만 해도 촛불시위의 자발성과 진정성에 감동을 받아 실체로 인정하려 했다. 하지만 15일 저녁 TV 특집방송과 뉴스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쇠고기 얘기하다 느닷없이 ‘공영방송 사수’가 왜 나오고, 정부가 시행도 않은 5대 사업 비판이 왜 나오나.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헌법 파괴 촛불장난으로 보게 된 것이다.”

-촛불집회의 한계가 있다는 뜻인가.

“자발성과 진정성을 벗어나 변질되고 있다. 사회적 충격과 정부 견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 더 이상 헌법 파괴 행위로 나아가는 것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이다. 우리는 직접민주주의나 국민소환제를 채택한 일이 없다. 합법적 정부를 100일 만에 나가라는 것은 헌법 파괴 행위다.”

-정부의 미숙함을 지적해야 하지 않는가.

“정부의 치명적 실수가 국민 감정을 건드렸다. 그에 대한 일이라면 함께 해법을 구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떠나 이상한 정치집회를 벌여 나가는 것이다. 쇠고기 문제를 확대하는 세력, 국민들의 쇠고기 감정을 이용하는 정치화된 세력을 인정할 수 없다.”

-보수층의 의병까지 언급했다.

“하도 답답해서 한 소리다. 역사적으로 의병은 외적뿐 아니라 내란 때도 있었다. 홍경래난의 기선을 초기에 꺾은 것은 지방군과 의병의 연합군이었다.”

-방송에서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라는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 사회적 조작도 개입돼 있다고 본다”고 했는데.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니다.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겠지만 10%대라는 통계를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을 과장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년6개월째 미국에 체류 중인 이씨는 『초한지』 완간을 기념해 9일 잠시 귀국했다. 2001년 진보·좌파 성향의 시민단체들을 홍위병에 비유해 비판했다가 ‘책 장례식’이란 고초까지 당했고,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2005년 12월 미국으로 떠났다. 7월 15일 출국할 예정이던 그는 “계획은 그랬는데, 내가 뭘 해야 할지 판단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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