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블론<左>과 세디노가 린다 패로 빈티지 선글라스를 쓰고 웃고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左>
‘린다 패로 빈티지’는 창업 과정도, 이름도 독특하다. 이 회사는 1970~80년대를 풍미한 선글라스 디자이너 린다 패로의 창고 속 유품을 세상에 내놓으며 시작했다. 패로의 아들인 자블론은 어머니의 창고를 정리하다 ‘보물’을 발견했다. 오래된 포장 박스 안에 그대로 남아 있던 당시의 신제품과 패로가 에밀리오 푸치, 발렌시아가 등과 함께 작업했던 디자인 스케치 같은 것이었다. 자블론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 발견했을 때 박물관에 보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작품이 박물관 안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패션과 스타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게 60년대부터다. 살아 있는 최고의 패션 아이콘인 모델 트위기도 당시 깡마른 몸매에 소년 같은 모습으로 어머니가 디자인한 선글라스를 썼다. 거의 얼굴 절반을 가릴 만한 크기였다. 여전히 트위기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패션 아이콘이다. 그러니 20여 년 전 어머니의 작품도 박물관에 모셔지기보다는 오늘날 우리와 함게 호흡하는 것이 더 흥미로울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빛을 보게 된 린다 패로의 유품은 ‘빈티지’라는 회사 이름으로 거듭났다. ‘유서 깊은 걸작’이란 뜻의 ‘빈티지’가 걸출한 선글라스 디자이너 이름과 결합한 것이다. 그는 “그때 발견한 선글라스의 수량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충분한 양”이라고 덧붙인 그는 “무난한 모양의 선글라스에 싫증 난 사람들에게 꾸준히 소개할 만큼은 된다”며 웃었다.
곁에서 얘기를 듣던 세디노가 ‘하우스 브랜드’에 대해 설명했다. “라이선스로 선글라스를 만드는 회사도 훌륭한 디자인을 내놓는다. 하지만 너무 지루하다.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야 하므로 이런 곳에선 재미있고 특별한 디자인을 만들기 힘들다. 큰 회사에선 상품이 나오기 40개월 전부터 디자인 기획에 들어간다. 명품 브랜드와 협의하고 결정하는 데 드는 시간이다. 우리처럼 언제든, 무엇이든 만들 준비가 돼 있는 것이 ‘하우스 브랜드’의 특징이다.”
세디노의 말처럼 린다 패로 빈티지는 명품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따서 선글라스를 디자인 하지 않고 거꾸로 패션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의뢰해 왔다. 드리스 반 노튼이나 에릭손 비몬, 소피아 코코살라키, 매튜 윌리엄슨, 베로니크 브란키노 같은 개성 강한 이들이 참여했고 모두 화제를 모았다. 자블론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정욱준을 만났다. 파리 컬렉션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한국인 디자이너의 작품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강승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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