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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yle] ‘입 안의 패션’ 디저트 … 오, 예술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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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본 최고의 베이커리 명인으로 불리는 요코다 히데오(50·사진)는 2년 전 신라호텔 1층에 막 문을 연 ‘패스트리 부티크’와 컨설팅 계약을 했다. 메뉴 개발에 아이디어와 기술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게는 당시 국내에 생소한 고급 디저트 문화를 선보인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도쿄 파크하얏트호텔의 조리장 출신으로, 자신의 과자공방인 ‘오크우드’를 열어 일본 내 열풍을 일으켰던 요코다는 그 일에 적역이었다.

그런데 그가 맨처음 내놓은 디저트는 논란의 대상이 됐다. 당시 한국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마카롱(계란과 설탕을 반죽해 거품을 내 구워내는 과자)이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낯선 과자는 잘 팔리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도록 매출이 오르지 않자 부티크 측은 조바심이 났다. 요코다는 당시 “석 달만 기다려 보자”고 했노라고 말한다. 그게 고객들이 고급 디저트를 알아줄 최소한의 기간이라는 주장이었다.

그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는 데는 3개월이 채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 신종 과자는 입소문을 타면서 단기간에 가장 인기 있는 디저트와 간식 메뉴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수요가 폭증하면서, 마카롱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바까지 출현했다. 신세계백화점 명동본점은 패션관 곳곳에 마카롱 바(bar) ‘아프레미디(apres midi)’를 두었다. 주로 여성 고객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다. 패션관 담당 강신 대리는 “처음에는 호기심을 갖는 정도였으나, 마카롱이 점점 알려지면서 포장 고객까지 늘고 있다”고 말한다.

마카롱뿐만 아니다. 디저트 메뉴 자체가 분화하고 있다. 와플은 마카롱 이전부터 인기를 끌었다. 요즘 레스토랑 메뉴에는 초콜릿·푸딩·케이크·타르트(바닥이 딱딱한 프랑스식 파이) 등이 기본으로 적혀 있다. 인터넷 ‘맛집’대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자체 개발한 디저트 메뉴 하나쯤 없으면 곤란하다. 미국의 디저트 레스토랑 체인이 입성한 데 이어, 아예 대기업과 유명 조리장들이 잇따라 디저트 전문점을 개업 중이다.

디저트 열풍의 주역 요코다를 패스트리 부티크에서 최근 만났다. 불황 시대, 웰빙 추세를 거스르는 이 열기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왜 사람들은 한 끼 식사보다 비싸고, 열량도 만만찮은 디저트에 빠져드는 것일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단것을 좋아한다. 아무리 식사를 많이 했어도 디저트를 먹을 배는 따로 있게 마련이다. 가격만 따지면 먹을까 말까 고민도 하지만, 그렇다고 안 먹을 수 없는 것이 디저트다. 건강이나 호주머니 사정만 고려하는 사람들은 디저트의 세계를 맛볼 수 없다.”

최근 주목받는 고급 디저트는 건강과 맛, 절제된 디자인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패션망고케이크, 베리콤포트푸딩, 하트밤양갱, 무화과아이스크림, 아보카도초콜릿케이크.

그는 일본도 디저트 문화가 빈약했다고 말한다. “디저트는 코스 요리 끝에 나오는 후식이라기보다는 요리 외에 먹는 간식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과자(和菓子·와가시: 일본의 전통 과자) 정도에 불과했던 일본의 디저트 메뉴는 프랑스를 비롯한 디저트 선진국 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30년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그는 전했다.

고급 디저트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최상의 식재료를 이용해, 최고의 기술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소금은 프랑스 개랑드 지역의 화산염을 공수하고, 녹차는 일본에서 가져와 쓰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생크림을 젓는 방향과 속도에서 푸딩을 만들 때 중탕하는 온도까지 고려해야 한다. 만일 포장 상품이라면 집에 도착해 먹는 시간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런 세심함 덕분에 일본은 프랑스와 함께 디저트 문화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이런 일본의 디저트 기술 및 문화와 한국의 그것과의 차이를 그는 10년 정도라고 본다. 그러면서 “한국 제과인들의 손재주와 학습 능력이 이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요코다가 국내에서 선보인 디저트는 마카롱에 그치지 않는다. 자허토르테(살구잼을 바른 오스트리아 초코케이크), 블랙포레스트(초콜릿과 블랙체리가 어울린 독일식 케이크), 에클레어(프랑스식 생과자) 등은 재료 본래의 풍미를 가장 이상적으로 담아낸 맛으로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근에는 한국식 재료를 접목시킨 녹차쌀케이크와 단호박시폰을 개발해 패스트리 부티크에 내놓고 소비자 반응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 끼에 10만원이라는 예산이 있다면 디저트에 얼마까지 투자할 용의가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3만원. 아무리 맛없는 요리를 먹었어도, 맛있는 디저트로 마무리하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잠시 뜸을 들인 뒤 그가 다시 말했다. “사실은 전체 비용의 3분의 2까지도 지출할 생각이 있다.”

이쯤 되면 그는 디저트(dessert)의 어원이 ‘치우다’의 프랑스어인 ‘desservir’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디저트는 요리를 모두 먹고 식탁을 치우고 난 뒤 나오는 단순한 음식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이여영 기자

◇마카롱=아몬드가루, 밀가루, 달걀 흰자, 설탕으로 만드는 지름 5㎝ 정도의 프랑스 고급 과자. 얇은 계란껍질처럼 생긴 겉을 깨물면 안쪽에 숨어있던 쫄깃한 내용물이 씹힌다.

디저트바 Best4

오후 2시, 식도를 통과한 점심식사가 장을 향해 열심히 연동운동을 하는 중이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문득 쌉싸름한 다크초콜릿 브라우니 한 조각과 아메리카노가 생각난다. 밥을 배불리 먹었는데도 단것이 당기는 것은 비단 디저트 중독자의 사정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나는, 달콤한 무언가를 갈망하며 디저트를 찾아 헤맨다.

1. 스노브(Snob·02-325-5770)=서울 홍익대 근처 극동방송국 맞은편에 앞마당이 예쁜 2층집이 있다. 수제 타르트와 케이크 메뉴를 기본으로 초콜릿, 쿠키, 카라멜 등 약 50가지의 디저트에 커피, 차, 스파클링와인까지 갖추고 있는 일본식 디저트 가게다. 여기는 ‘티라미스 타르트’가 맛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티라미스를 타르트로 만든 것이다(1조각 4800원). 부서질 듯 바삭한 타르트와 크림처럼 부드러운 티라미스의 조화가 환상이다.

2. 페이야드(Payard·02-310-1980·위 사진)=‘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와 친구들이 쇼핑 후 들르던 ‘페이야드’가 신세계 명동본점 명품관 6층에 문을 열었다. 뉴요커들이 맛있는 디저트를 먹기 위해 줄을 선다는 바로 그곳이다. 점심시간부터 마감시간까지 거의 테이블이 꽉 차 있다. 요일을 가리지 않고 금방 동나버리는 애플타틴(apple tartin)은 생각보다 많이 달지 않고 상큼해서 질리지 않는다(1조각 6600원). 진한 다크 초콜릿 무스를 즐기는 사람에겐 루브르(Louvre)를 추천하고(1조각 6600원), 피나콜라다 칵테일 매니어라면 스윗릴리프(sweet relief)를 꼭 경험해 보길 바란다(1조각 5500원).

3. 패션5(Passion Five·02-2071-9507)=한남동에 있는 ‘패션5’, 으리으리한 상들리에를 지나 입구에 들어서면 디저트 천국의 문을 연 듯 잠시 정신을 놓게 된다. 360도로 진열된 형형색색의 케이크와 초콜릿, 바움쿠헨, 자그마한 유리병에 든 푸딩까지 디저트 갤러리답게 보는 즐거움이 더 크다. 직원의 도움 없이는 선택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곳의 대표 선수는 독일식 디저트 바움쿠헨이다. 반죽을 21번이나 구워 21개의 나이테가 그려졌다. 롤케이크보다 훨씬 촉촉하게 스르르 녹는다(크기에 따라 1만2000원부터). 영수증에 써 있는 문구가 재미있다. “Life is short, eat dessert first.”(인생은 짧다, 그러니 디저트를 우선 즐겨라)

4. 바닐라컵케이크(Vanilla Cupcake·02-333-0221)=뉴욕 스타일의 컵케이크를 만나고 싶다면, ‘바닐라컵케이크’에 가면 된다. 서교동 작은 골목 안에 꼭꼭 숨어 있는 보물 같은 곳. 착한 거인 아저씨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빨간 대문집이다. 추천 메뉴인 ‘체리초코’는 달콤 쌉싸래한 초코케이크에 신선한 크림과 상큼한 체리를 올렸다. 윗부분의 크림과 아랫부분의 케이크를 함께 먹어야 더 맛있다. ‘바닐라블로썸’은 누구나 좋아하는 인기 메뉴.

김은아<푸드스타일리스트>

*요리하고 글쓰는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은아는 중앙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와 세계식문화연구소를 거쳐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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