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잘못 바로잡되 성과는 계승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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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출범 100여 일 만에 심각한 위기를 맞은 이명박 정부가 수습책의 일환으로 내각과 청와대의 개편을 고민하고 있다. 인적 쇄신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외교안보팀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태를 촉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통상문제인 만큼 외교라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출범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자리도 못 잡은 외교팀에 벌써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도 성급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안보팀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면 사람만 바꿀 게 아니라 차제에 그동안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개선할 점은 개선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과거 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있다. 과거 부시 정권 초기의 “매사를 클린턴 정부와 반대로 하겠다(Anything But Clinton)”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어떤 정책도 전적으로 옳거나 잘못된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전 정부의 좋은 점은 계승하고 잘못된 점은 고치는 그야말로 ‘실용적’ 자세가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안보정책이 보수층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유화 일변도 정책이나 한·미 관계에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던 소위 자주외교 노선은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통일부가 외교안보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되어 매사에 남북공조를 우선하였던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한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정책노선과 정책결정 시스템을 대폭 손질하겠다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한과의 관계를 보다 호혜적으로 재정립하고 한·미 동맹 복원을 최우선하겠다는 정책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없애고 외교부 장관이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의 의장을 맡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계추가 지나치게 반대 방향으로 가거나 아예 시계가 고장난 듯한 현상도 엿보인다. 가령, 더 이상 일방적 대북지원은 않겠다고 하다 보니 인도적 지원조차도 주저하게 되었다. 경제를 살리고 손상된 한·미 관계를 하루속히 복원시키겠다는 생각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두르다 쇠고기 협상에서 그야말로 통 큰 양보도 하게 되었다. 통일부와 NSC 사무처가 주도하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지나쳐 아예 정책조정 시스템 자체를 거의 없애버렸고 이는 정책혼선으로 이어졌다.

지난 10년 국제환경과 국민의식은 크게 변했다. 많은 국민이 북한에 끌려다니는 것은 비판하지만 북한과 대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하지만 한·미 관계는 보다 대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도 과거에는 단순히 북한의 군사적 위협 억제만 고려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군사·외교·경제·인권·인도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가 되었다. 그런 만큼 긴밀한 정책조정은 필수적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관련해 시급한 것은 시대변화에 걸맞은 정교한 정책을 만들어내고 정책결정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는 것이다. 이제 단순히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남북관계나 외교문제에 대한 국민의 다양한 시각과 이익을 수렴할 수 있는 세련된 정책이 필요하다. 또 민주화 시대에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은 좋든 싫든 국내정치의 큰 부분이 된 만큼 정책조정은 청와대가 주도해야 하며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탄탄한 상시 조직이 있어야 한다.

과거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과거의 잘못은 바로잡되 성과는 활용하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이명박 정부가 새로운 외교안보 노선을 신속히 모색하기 바란다.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