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편의가 빚은 '특차 무더기 미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특차모집제도가 94학년도 입시부터 시행된 이후 해마다 계속되는 무더기 미달사태는 한마디로 수요와 공급간의 불균형 때문이다.이 불균형은 바로 대학의 고질적 병폐인 공급자 위주의 행정편의주의와 형식주의에서 비롯된다.
올 특차모집에서 미달사태를 빚은 대학은 49개대.이중 대학전체에 한명도 지원을 받지 못한 지방대학도 있고 무려 160여개모집단위가 지원자 0을 기록하는 수모를 당하는등 총 특차정원 3만3,349명중 4분의 1이 넘는 8,707명 이 미달됐다.
반면 특성화된 일부 학과만 특차모집하거나 꾸준히 대학개혁을 지속해온 신흥.전통 명문대는 전년보다 특차경쟁률이 대폭 상승하면서 「짭짤한 소득」을 거두었다.특차모집이란 일정한 지원자격 기준을 미리 설정,전.후기 일반모집보다 앞서 신입 생을 선발하는 제도인 만큼 제대로 활용되려면 모집단위별 적정한 자격기준 설정이 필수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미달사태를 빚는 대학들은 턱없이 높은 자격기준을 정해 미달사태를 자초하는가 하면 모든 모집단위에수능성적 상위 몇%이내나 내신 몇등급 이내 등 획일적 기준을 적용해 날로 다양화하는 교육소비자의 입맛을 따라 가지 못하고 있다. 특차 미달정원을 일반모집에서 충원하면 그만이라는 계산으로 지원자격을 낮춰 「체면」을 구기거나 지원자격을 다양화해 사정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느니 속되게 표현해 가게세 안낸다고 좌판만 벌여놓은 배짱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공대 전학과에 내신등급 2등급이내,수능 상위 5%이내라는 자격기준을 내걸고 특차모집에 나선 부산대는 14개 모집단위중 수험생이 단 한명도 지원하지 않은 학과를 포함,12개 모집단위에서 미달사태를 빚었다.
이에 반해 지난해 평균경쟁률 1대1을 밑돌던 경북대가 지원자격을 없애 11대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한 것은 지원자격만 조정되면 「손님」은 얼마든지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무더기 미달사태를 빚은 사립대들도 마찬가지여서 지원하고싶은 학생에겐 자격기준이 너무 높고,자격이 되는 학생들에겐 지원하고 싶지 않은 대학이 되고 말았다.
집중지원하는 전공별로 특성화 전략을 구사하기 보다 타대학보다내세울 것이 없는 학과나 야간학과에도 지원자격을 높여잡은 특차정원을 배정,인문.자연계 한곳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경쟁력 없는 나머지 계열에서는 미달사태가 속출하는 대학도 적지 않았다. 결국 96학년 특차모집 결과는 수시모집까지 허용되는등 전면 개편된 97학년 입시부터는 각 대학들이 실력에 걸맞은 모집단위별 전략을 짜지 않을 경우 학생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당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예고한 것이다.
권영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