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전환21>18.끝.21세기를 향한 대전환시대 국가전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세계는 지금 미증유의 변화를 겪고 있다.새롭게 형성되고 있는세계 경제질서는 사람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정보통신 혁명과 범지구적인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환경 문제도 이러한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형성 하는 원인이다.
21세기를 대비하는 새로운 국가 경영의 조건은 무엇인가.중앙일보는 지난 3월부터 진행해온 「대전환 21」을 일단락지으면서저명 인사들과의 좌담회를 통해 전략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했다.이 좌담회는 지난 21일 하얏트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편집자註] ^황창기=중앙일보.MBC 공동기획으로 국가경영전략연구원에서 「21세기를 향한 대전환 시대의 신국가 발전전략」이라는 주제를 놓고 연구를 시작한지 1년여가 흘렀습니다.대전환의 징후들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냉전 종식과 함께 「경쟁」은 활동의 장을 정치에서 경제로 옮겨가면서 무한 경쟁이라는 말을 유행시켰습니다.생활상의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정보화시대의 화(化)라는 접미사는 더이상 적절한 단어가 아닙니다.이미 정보시대가 도래한지 오래 입니다.또 환경문제는 어느 때보다 전지구적인 과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변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에 대해 냉전후의 세계.정보화.환경의 세부문으로 나눠 논의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어령=냉전이 인류의 한 세대에 불행했던 시절이었음은 사실입니다.그러나 형식적으로는 단순했으며 측정 가능했다는 의미에서는 살기 편했던 시절이라고 할수 있습니다.미국과 소련이라는 모델이 있었고,적과 아군이 분명했지요.
아리따운 공주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그녀를 납치한 악령을 죽여야 한다는 내용의 세인트 조지 콤플렉스가 서구 역사를 냉전 시대까지 몰고 왔습니다.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공주와 함께 살기위해 악령은 반드시 없애야 했습니다.그러나 동시에 악령이 없다면 공주와의 결혼이 불가능했으므로 필요에 따라 만들어내야 했던존재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악령 만들기의 신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강경식=정치적으로는 더불어 산다는 평등의 논리가 고양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경쟁이 강조되고 있습니다.언뜻보면 비논리적으로 보입니다만 새로운 방식의 경쟁을 생각해 낸다면 이 모순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독창적인 방법으로 협력한다는 의미의 「협창성(協創性)」의 경쟁입니다.일부 항공회사들이 경쟁과 동시에 다양한 업무제휴를 통해 공존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생산성 없는 경쟁은 배격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어령=기능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는 경제적으로 공존 체제를 이룰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예를 들어 기초 과학의 이론은 미국.유럽등 서구 선진국에서 담당하고 개발과 상품화는 일본이,그리고 생산은 아시아에서 하는 식으로 말입니 다.
그런데 특히 향후 국가전략을 모색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염두에둬야 할 것은 문화적 요소입니다.경제와 문화를 분리한 국가 전략은 무의미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문화 상품이라 할때 그것은 단순히 영화나 노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하드웨어에 실려진 욕망이 바로 문화입니다.
비디오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베타 방식은 기계적으로 VHS보다 우수했습니다.그러나 일본에서 베타방식이 녹화가능 시간이 짧았던 관계로 기껏 러브호텔의 포르노 상영용으로 사용됐던 반면,VHS는 직장인들이 직접 볼수 없어 아쉬워했던 야 구중계를 담아낼수 있었고 후자가 승리했습니다.
^강경식=앞으로도 하드웨어에 대한 문화의 영향력은 계속 증대될 것입니다.일본이 100원어치의 하드웨어(비디오기기)를 판매한다 하더라도 1,000원,1만원에 달하는 소프트웨어 장사는 미국의 몫입니다.결국 처음 순간 돈을 버는 나라가 일본처럼 보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유리하지요.
^이상희=그렇습니다.사실 과학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실의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연결하는 능력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지퍼를 처음 만든 사람보다 특허권을 사서 지갑에 지퍼를 단 이들이 큰 돈을 벌었습니다.에디슨은 세계 최초로 축음기를 발명했지만 『메리의 양』따위를 녹음한 탓에 재미를 보지 못했지요.
만약 당시 최고의 유행곡을 녹음했더라면 사정은 어떠했을까요.
^이어령=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민족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일까요.비디오를 이용,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창조한 최초의 사람이 한국인 백남준인 만큼 비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지만 과학.경제.문화등 각 부문의 벽이 허물어질수록 백남준같은 이들이 많이 배출될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학문간의 경계를 초월한 활동은 비전문가적인 것으로 취급돼 대접받지 못했지만 21세기에는 이와 반대로 다양하고 잡스러운 것이 위력을 떨치는 잡(雜)의 시대가 펼쳐질 것입니다.
^황창기=탈냉전 시대는 흔히 국경 없는 시대라 일컬어지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부문의 구별이 없어지는 시대라고도 풀어 볼 수 있겠군요.우리의 발상과 삶의 방식도 여기에 맞춰 변화해야겠지요.
***학문간 경계 소멸 ^이어령=경계의 소멸이 개체의 상실로연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국가간에 활발한 교통이 이뤄지면서 고유의 것이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사물놀이가서양 사람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듯 한국적인 것중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것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마련입니다.사물놀이는 세계적(global)이면서도 지방적(local)이라는의미에서 글로칼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정치.경제.문화의 영역에서 글로칼한 요소를 어떻게 추출,결합시킬 것인가,그리고 이 원리를 컴퓨터망의 구축이나 현실의 농업.환경 문제등의 해결에 어떻게 적용.검증하는가 하는 것이 대전환을 준비하는 기본 문제 의식이 돼야 할 것입니다.
^황창기=개인의 생활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보화의 중요성은 더욱커지고 있습니다.개인.기업,그리고 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겠습니까.
^이어령=컴퓨터망이 일정수준 이상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정보의 민주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올들어 우리나라에서 사상 최초로 컴퓨터가 가전제품을 제치고 1위 상품이 됐다는사실은 고무적이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 져 있습니다.
일본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미국은 열사람중 네사람이 컴퓨터를보유하고 있고 이중 60%가 인터네트에 가입해 있습니다.반면 일본의 컴퓨터 보급률은 인구대비 10%에 지나지 않아요.
^이상희=급속한 통신 관련 기술의 발달은 기업의 행태에도 큰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과거 기업은 먼 미래를앞서 내다보고 계획을 세운다면 큰 이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오늘날 기업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변수가 많아 장기 예측을 하는 경우 손해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따라서 상황변화에 대한 기업의 기민한 대처능력이 중요하게 됐습니다. ^강경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민간 기업에서는 중간단계의조직을 과감히 없애는 등의 구조 재조정을 과감히 시행해오고 있습니다.반면 현재 통폐합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정부 조직은 아직외형적으로도 과거의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했습니다.구 조 조정 필요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정부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정보화 시대의 정부는 군대를 통솔하는 사령관이 아니라 개개인이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는 가운데 조화를 만들어내는 교향악단 지휘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대통령이라는 직위도 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 들로 하여금공감대를 형성케 유도하는 역할로 자리매김 돼야겠지요.
***상황대처능력 중요 ^이상희=거의 완전한 경쟁이 이뤄지고있는 컴퓨터 기술 발전 속도가 아직 관제경쟁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통신 기술보다 현저히 앞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큽니다.
물론 국가가 무조건 탈규제 일변도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정보화 사회에서 낭비를 없애줄 수 있는 표준화 작업은정부가 나서서 해야할 규제 사항입니다.
^황창기=끝으로 환경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생태 환경적으로건전하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발전 정책은 어떻게 전개돼야 할까요.
^이상희=우리 사회에서 환경정책은 오염에 대한 규제와 관계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앞으로는 이를 보다 확장,환경 의식을 교육의 기본 과제로 삼고 환경 관련 기술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미국의 경우 환경산업에 진출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환경 산업에 대한 투자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의도도 깔려있겠지요.
^강경식=신토불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지만 인간과 환경이 바로 하나라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그리고 환경문제에 관한한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라 후진국에서 배워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어령=우수한 품질의 반도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바탕은 바로 고순도의 물에서 나온다고 합니다.유럽에서 반도체 산업이 융성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자연은 사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 리안에 있습니다.환경은 정보화의 큰 자원이자 보고인 것입니다.
〈정리=박장희 기자〉 姜 慶 植 〈국회의원〉 李 祥 羲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李 御 寧 〈이화여대 석좌교수〉 黃昌 基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강경식(姜慶植)=서울대법대.미국 시러큐스대.재무부장관.대통령 비서실장.현재 14대 국회의원▶이상희(李祥羲)=서울대약대.미국 조지타운대.과학기술처장관.11,12대 국회의원.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이어령(李御寧)=서울대.중앙일보 논설위원.초대 문화부장관.예술원 회원.현재 이화여대 석좌교수 ▶황창기(黃昌基)=서울대.외환은행장.
은행감독원장.보험감독원장.현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