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결 됐는데도 “파업” 투표는 뭐하러 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16일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일명 ‘쇠고기 파업’) 찬반투표에서 예상 밖의 부결로 나타나자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민주노총 파업에 끼칠 영향도 문제지만, 노조가 창립된 1987년 이래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부결이어서 집행부의 지도력이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역 노동계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에 정치파업에 나설 경우 받게 될 국민의 눈총이 노조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다”는 분석이 흘러나왔다. 한 노조원은 “정치파업에 대한 노조원들의 반감은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파업 때도 보여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노조는 이날 오후 4시30분쯤 “민주노총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총투표자 3만8637명에 2만1618명(55.95%)이 찬성했다”며 ‘가결’된 것처럼 발표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상 쟁의행위 결정은 투표자가 아닌 재적 조합원의 과반수로 결정되는 것 아니냐’며 재적조합원 대비 찬성률을 밝히라는 기자들의 주문이 나오자 “확인해 보겠다”고 대답한 뒤 연락을 끊었다.

이어 2시간쯤 지난 오후 6시10분쯤 노조는 “현대차 지부의 투표율이나 찬성률은 중요한 의미가 없기 때문에 투표자 대비 결과만 발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번 민주노총의 파업은 민생투쟁이기 때문에 노동관계조정법이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어서 투표자 대비 과반수 찬성만으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이 파업을 결정하면 그 산하 금속노조 지부인 현대차 노조는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의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이번 파업을 어차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재적 대비 과반수 찬성으로 나온들 정부가 합법으로 인정해 주겠느냐”고 말했다. 조합원의 참여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조합원들의 의지를 물은 것일 뿐 법적으로 의미 없는 투표였다는 것이다.

노조가 파업을 강행할 것이라는 방침이 알려지자 노조 안팎에선 논란이 일고 있다. 이우헌 노무사는 “파업 참가 여부는 사업장(회사)별 찬반에 따라 결정된다”며 “현대차 노조가 금속노조의 지부라 하더라도 파업에 참가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고 말했다.

노조 홈페이지에는 “주위 동료들 때문에 쉽사리 반대표를 던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렇듯 부결이 나왔다는 건 정치파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 “결과는 분명히 부결이다. 민심이 뭔지 파악하고 스스로 규약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똑바른 집행이다” 등의 글이 올랐다. 시민 이지민(42·울산시 연암동)씨는 “노조 집행부는 지난해 시민들과 조합원들의 바람을 존중해 무파업으로 임단협을 마쳤던 걸 벌써 잊었느냐”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