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수출 증명제’ 진통 … 한·미 “시한 없이 협상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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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 양국이 13~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쇠고기 추가협상을 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 16일 다시 협상을 하기로 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3일 2시간30분간 회담한 데 이어 14일 3시간30분 동안 협상을 벌였다. 김 본부장은 14일 회담 직후 “(협상을) 하루 쉬고 내부 협의를 한 뒤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말해 16일 협상을 속개할 예정임을 밝혔다.

그레친 하멜 USTR 부대변인도 회담 뒤 “이번 협상은 어렵고도 중요하다(tough and critical).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진행 상황에 달렸다”고 말해 양측이 접점을 찾는 데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음을 내비쳤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첫날은 서로의 의중을 떠보는 탐색전 수준이었고, 둘째 날도 양측이 핵심 쟁점을 다룰 만큼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17일께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양국 정부 관계자들은 “17일 타결될지는 알 수 없다. 협상 시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협상의 핵심은 미국 정부가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출할 것이라는 점을 어떤 방식으로 보증해줄 수 있느냐다. 양국은 현재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교역하지 않겠다는 민간 수출입업자들의 자율 규제를 어떤 식으로 보완할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월령 표시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미국 측에 연방정부 검역관이 수출 작업장에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출하는지 감시하도록 ‘수출증명(EV) 프로그램’을 적용해 달라고 제안했다.

정부가 직접 개입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통상규범을 위반하는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변형된 방식의 EV 프로그램도 거론되고 있다. 민간 수출업체들이 ‘30개월 미만’ 조건의 한국 EV 프로그램을 미국 정부에 제출하고, 미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감독·확인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를 피하면서 최대한 구속력을 얻자는 것이다.

이화여대 최원목 교수는 “민간 차원에서 만든 기준을 정부에 인증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이어서 국제법과의 충돌 문제는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 결과가 일본·대만 등 다른 수입국과의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 확답을 꺼리고 있다. 워싱턴 일각에선 우리가 추가협상이 아닌 재협상을 하자고 하면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자동차 부문 재협상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협상단과 주미 한국 대사관 측은 “회담 결과는 협상단이 서울에 돌아가면 발표하게 될 것”이라며 협상 내용에 대해 함구했다. 대사관 측은 “김 본부장의 워싱턴 체류 기간 중 협상 진행상황 및 결과에 대해 브리핑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협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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