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구의 역사 칼럼] 소통력은 훈련으로 길러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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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39면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극장판이 개봉했다. 이 드라마에는 여자들의 욕망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그것이 매력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유로운 듯 보이는 이 드라마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양다리’와 ‘judge’다. 양다리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고, 문제는 ‘judge’다. ‘judge’란 ‘평가한다’는 뜻인데 비난 쪽에 가깝다. 본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중 한 명인 사만다가 배달 온 남자와 즉석 성관계를 맺고 있는 장면을 본 친구 캐리는 놀라 문을 닫고 나와 버린다. 누가 봐도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장면이다.

그러나 사만다는 캐리에게 그 행동이 자신을 ‘judge’한 것이라며 따진다. 돈독한 우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격렬하게 부딪친다. 어떤 경우라도 상대방에 대해 쉽게 판단하고 또 평가할 수 없다는 논지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그것을 들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 선왕조 시절부터 믿고 소중히 여겨 모든 것을 맡겼던 자로 두 송(송시열·송준길)만 한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른바 둘째 아들이라고 주장하여 선왕(효종)의 적장자 지위를 부정하여 정통성을 위태롭게 합니다. 이미 저뿐만 아니라 조야의 공론도 그들을 현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실로 망령스럽고 인후하지 못하며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자기 자신들의 안부 존영만 생각하고 임금의 안부 존영은 이렇듯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조선 당쟁사의 핵심이라고 하는 기해예송(己亥禮訟·1660)에서 윤선도가 올린 상소의 한 구절이다.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로 유명한 그 윤선도(1587~1671)다. 그는 효종이 둘째지만, 첫째인 소현세자가 죽은 후 왕위에 올랐으니 큰아들이 된 것이고 그래서 상복(喪服)을 3년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둘째 아들임을 인정해 1년복을 주장하는 송시열을 맹비난했다.

조선에서 사림파(士林派) 등장 이후 권력투쟁은 언제나 칼이 아닌 말로 이루어졌다. 말로써 명분을 잡고 권력을 얻어야 했다.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문제는 끝까지 명분에서 밀리지 않아야 했다. 조선은 근 500년 동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훈련을 꾸준히 했다. 말로 이기려니 어쩔 수 없었다.

쇠고기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대통령과 소통이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소통이 대통령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상대방과 의견을 주고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의견에만 몰두해 왔다. 여기에서 소통은 기대하기 힘들다. 누구는 소통이 되고 누구는 소통이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소통 능력이 떨어진다. 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의 ‘judge’ 논란은 그들도 아직 의견을 주고받는 문제에서 완전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 준다. 계속 훈련 중이다. 그들은 왜 그런 훈련을 하는 것일까. 사실 상대의 말을 잘 듣고 대처할 때 모든 대처는 더 쉬워진다. 얻는 것이 있다. 500년 동안 익숙했던 것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소통에 약하다는 걸 인정하고, 듣는 훈련을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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