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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수석에 밀려 제 목소리 못 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6호 08면

김도연

2월 말 교육과학기술부 수장으로 취임한 1m90㎝의 장신(長身) 김도연 장관. 그의 취임 일성은 “교육을 멀리 보라고 발탁한 것 같다”였다. 창의성·다양성·자율성을 강조하며 경쟁 체제로의 전환을 강력히 시사했다. 김 장관은 서울대 공대 학장 재직 시절 영어 강의 확대와 교수평가제를 도입하는 등 글로벌 교육 경쟁력을 중시하는 새 정부의 교육정책과 코드가 일치해 소신 있게 정책을 펴 나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김 장관은 ‘멀리 보기’에 실패했다. 이주호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의 목소리에 눌려 제대로 정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이 수석이 대입 자율화와 영어 공교육 방안의 뼈대를 만든 것은 물론 교육과학부의 고위직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왕수석’으로 불린 것과 대조적이다. 김 장관이 고위직 인선 작업을 놓고 고심 중이던 3월 4일 이 수석은 대학 업무 담당 과장들을 불러 부처가 나아갈 방향을 설명해 역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내놓은 4·15 학교 자율화 정책은 ‘가까이 있는’ 교육 현장으로부터 외면당했다. 0교시와 우열반 등 수준별 수업을 하고 방과 후에는 학원 강사를 초빙해 적은 비용으로 보충수업을 한다는 계획은 사교육비 절감 방안의 하나로 나왔다. 그러나 일선 교육청은 이를 시행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한국교총 김동섭 대변인은 “인수위 때부터 추진된 새 정부의 정책 목표나 철학에는 교사들이 공감하지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일선 학교의 여론수렴 작업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정진화 전교조 대표와 만나 “국민이 대부분 (자율화 방안을) 환영할 줄 알았다”고 말해 현실 인식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이런 일방적인 정책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10대 학생들이 ‘미친 소 물러가라’ ‘미친 교육 물러가라’를 외치도록 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김 장관은 조직 장악에서도 실패했다. 3월에 만든 ‘영어교육강화추진단’ ‘교육분권화추진단’ ‘대학자율화추진단’ 등 5개의 TF를 공무원 감원 원칙에 밀려 한 달 만에 전면 취소해 체면을 구겼다. 김 장관의 경질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5월 ‘스승의 날 학교 방문 사건’ 이후였다. 그는 “특별교부금이 나가니까 15일을 전후해 학교에 가서 교직원과 학생들을 격려하고 오세요”라는부하직원의 제안을 그대로 따랐다. 본인은 물론 차관, 실·국장급 간부 6명이 모교나 자녀가 재학 중인 학교를 찾아 많게는 2000만원부터 적게는 500만원씩 발전기금을 내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전국 시·도교육청에 예산을 10%씩 절감할 것을 요구한 시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 장관은 “30년 가까이 이어진 관행이었다”면서 일부 간부만 인사 조치해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교육부와 과학기술부가 합쳐지는 과정에서 과학기술 분야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과학 쪽 장관을 발탁했으나 김 장관은 교육 분야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김 장관의 후임에 ‘실세 장관’ ‘정치인 장관’이 기용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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