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 명이 5억 운명 흔들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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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05면

유럽연합(EU)의 개정 조약인 리스본 조약이 12일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반대 53.4%, 찬성 46.6%로 부결됐다. 따라서 조약을 2009년 1월 1일 발효시키려는 구상은 물 건너갔다. 조약 발효를 위해서는 27개 회원국 전체의 비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중 아일랜드만 조약 비준을 국민투표로 하기로 결정했다.

국민투표로 ‘EU 통합’ 부결시킨 아일랜드

리스본 조약은 EU의 확장과 통합의 심화를 목표로 2년 반 임기의 EU 대통령, 외무장관직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300만 명의 아일랜드 유권자들이 4억9000만 명에 이르는 EU 전체의 운명을 좌우한 셈이다. 당장의 희생자는 크로아티아·터키다. 이들의 EU 가입은 예정보다 연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아일랜드에서는 그동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조약 반대 운동이 활발했다. 반대론자들은 전쟁 발발 시 중립성 훼손, 낙태·동성결혼 인정 가능성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일부 유권자는 반대표를 현 정부에 대한 불만 표출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투표 결과가 나오자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공동성명을 내고 비준이 완료되지 않은 8개 회원국들은 의회 비준 절차를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새로운 해법이 나올 때까지 일단 비준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리스본 조약의 앞날은 19~20일 열릴 EU 정상회의에서 논의된다. 그러나 뾰족한 해법은 없다. 리스본 조약을 백지화하고 새로운 헌법이나 조약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또한 리스본 조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한 논의와 조정이 끝났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를 다시 실시하는 것도 승리한 측의 반대 등으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이번 부결 사태를 계기로 반(反)EU 정서가 확산될 기미도 보이고 있다. 이미 영국 보수당과 일부 노동당 의원들은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법적인 조정’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법이나 제도보다는 의지가 중요하다”며 현행 체제로도 EU가 본래의 목적에 맞게 기능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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