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영화 ‘괴물’은 환경권력에 대한 조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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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 영화를 보라
고미숙 지음, 그린비, 264쪽, 1만2900원

젊은 사학자 고미숙의 영화비평집이다. 고미숙 혹은 그녀가 속한 연구공동체 ‘수유+너머’가 그간 펴내온 일군의 ‘영화로 철학하기’‘인문학과 영화의 만남’ 저작의 하나다. 조선후기 연구를 통해 한국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선보였던 고미숙이 이번에는 ‘괴물’‘라디오스타’ 등 6편의 대중영화에 주목했다. 영화를 통해, 혹은 영화에 드러난 한국 근대성에 대한 해부와 고찰이다.

스스로 ‘탈코드’를 코드로 했다고 밝혔듯이, 전체를 꿰뚫는 새로운 주제어는 없다. 각각 영화들에 대한 인문학자의 감상과 분석을 소개한 글이다. 평소 고미숙 저작의 통렬함 대신에 쉽고 편안한 비평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가장 흥미로운 글은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괴물’ 편이다. 여러 세대를 겨냥한 키덜트 블록버스터, 혹은 반미코드 영화로 인식됐던 ‘괴물’에 대해 고미숙은 ‘위생권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괴물’의 흥행과 재미는 “위생권력의 정치적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문명국가가 될 수록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더욱 체계적으로 노예화되어 간다”는 이반 일리히의 말과 함께 영화가 그려내는 위생권력의 문제를 짚어낸다. 가령 영화속 괴물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특단의 조치라던 ‘에이전트 옐로’가 아니라 고작 불화살에 의해 죽는 것은, 결국 권력의 외부에 있는 야생성에 의해서만 타도될 수 있다는 위생권력에 대한 조롱이라고 풀어낸다. 또 영화 도입부 군의관이 “먼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면서 독극물을 한강에 방류해 보이지 않게끔 하는 장면에서는 시각적인 것을 특권화하면서 도래하는 근대성을 읽어낸다.

‘라디오 스타’에 대해서는 외부자들로 가득한 세계를 그려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또 2000년대보다 조선시대에 오히려 더 활발했던 성담론들을 고시조에서 끌고 와 섹슈얼리티가 억압받은 역사는 사실 근대 이후라고 밝혀낸다(‘음란서생’). ‘서편제’를 뒷받침하는 한의 정서에 대해서는 괴로워야만 예술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근대적 미적 기준이라고 비판한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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